북의 "전민과학기술인재화" (1) - 초중등 과학기술 교육 강화
[연재] 북 과학기술 톺아보기 (8)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통일뉴스 기고글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121
과학기술 인재 양성은 북의 핵심 국정 과제
북은 해방 직후부터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강조해왔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보산업 시대' 담론('21세기는 물질적 부를 창출할 때 컴퓨터와 결합된 지식노동의 비중이 크게 높아지는 시대')을 제기한 2001년부터는 핵심 국정 목표로 꼽았다.
북이 지향하는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는 과학자·기술자 등 전문가의 양적·질적 확대뿐 아니라, 노동자·농민 등 전체 주민의 과학기술 역량 향상도 포함된다. 이는 '전 인민의 인텔리화'를 문화혁명의 핵심 과제로 제기한 김일성 시대부터 이어진 것이다.
전민과학기술인재화 = 전 국민의 이과화
북은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2013년경부터 '전민과학기술인재화'라는 말을 쓰고 있다(필자가 본 북의 문헌 중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2013년 8월 25일 '선군절' 담화에서 가장 먼저 등장했다). 이는 말 그대로 인민 모두를 과학기술 인재로, "과학기술 발전의 담당자"로 만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모든 주민이 대학 졸업 수준의 과학기술 지식을 갖고 그 지식을 활용해서 자기 직무와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 국민의 이과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은 현시대가 '과학기술이 사회 전반의 발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종합적인 국력을 좌우하는 지식경제 시대'이기 때문에, 경제·교육·국방·보건의료·체육 등 국가의 모든 영역에서 제기되는 여러 문제를 과학기술로 풀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더 많은 전문가가 필요할 뿐 아니라, 노동자·농민·사무원 등 모든 주민이 '지식 노동자'라 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과학기술 발전에 필수적인 전민과학기술인재화
위와 같은 인식에서 북은 당 대회,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등 중요 회의에서 새로운 전략, 새로운 목표를 결정할 때마다 거의 예외 없이 전민과학기술인재화를 강조해왔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경제건설에 총력 집중 노선·대북제재에 대한 정면돌파전·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 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발전이 필수적인데, 전민과학기술인재화는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핵심 전략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래 그림은 2019년 12월 말 북이 대북제재에 대한 "정면돌파전"을 결정한 직후인 2020년 1월에 나온 선전화이다. "정면돌파전의 열쇠는 과학기술"이라고 하면서 정면돌파전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있던 북의 입장을 반영한 그림이다.
중앙의 구호 아래 작지만'전민과학기술인재화'를 넣음으로써, 과학기술에 기초한 정면돌파전을 위해 전민과학기술인재화가 필수임을 표현하였다. (조선중앙통신, 2020.1.22.)
김책공업종합대학 전자도서관에 부착된 전민과학기술인재화 구호(조선의 오늘, 2018.11.13.)
위 선전화를 포함하여 교육을 강조하는 북의 선전화 다수에 이 도서관이 들어간다.
전민과학기술인재화는 북 교육의 핵심 목표
당연히 북은 전민과학기술인재화를 교육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 예컨대 김정은 시대 북 교육정책의 총론으로서 2014년 발표된 '새 세기 교육혁명'의 핵심 목표가 '모든 청소년을 강성국가 건설의 역군으로 육성'과 '전민과학기술인재화 실현'이다.
새 세기 교육혁명은 인재 강국을 실현하기 위한 것인데, 현시대가 과학기술의 시대, 지식경제 시대이기 때문에 과학기술 인재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래서 북은 새 세기 교육혁명 발표 이후 "과학기술 교육의 결정적 강화"를 교육 내용 편성의 기본방침으로 삼아 왔다. 2019년 9월 제14차 전국교원대회에서도 "과학이 경제발전을 견인하는 기관차라면, 과학의 어머니는 교육"이라고 하면서 과학기술 교육의 질적 향상을 교육의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헌법에도 명시된 전민과학기술인재화
2019년 개정된 북의 헌법에도 전민과학기술인재화가 들어갔다. 사상혁명, 기술혁명과 함께 3대 혁명의 하나인 문화혁명의 목표를 규정한 제40조에서 "온사회를 인테리화한다"가 "전민과학기술인재화를 다그친다"로 바뀐 것이다.
아래에서 알 수 있듯이 북은 다른 내용을 그대로 둔 채 "인테리"(인텔리), 즉 '지식인' 중에서도'과학기술인재'를 특정하여 강조했다.
(개정 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문화혁명을 철저히 수행하여 모든 사람들을 자연과 사회에 대한 깊은 지식과 높은 문화기술수준을 가진 사회주의건설자로 만들며 온 사회를 인테리화한다.
(개정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문화혁명을 철저히 수행하여 모든 사람들을 자연과 사회에 대한 깊은 지식과 높은 문화기술수준을 가진 사회주의건설자로 만들며 전민과학기술인재화를 다그친다.
(강조는 필자)
초중등 의무교육, 11년에서 12년으로 연장
북은 새 세기 교육혁명을 표방하면서 전민과학기술인재화를 위해 모든 교육 과정에서 과학기술 교육을 강화해왔다. 이를 소학교(초등학교)부터 고급중학교(고등학교)까지의 보통교육, 고급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대학의 고등교육, 그리고 노동자·농민·사무원 등을 대상으로 한 성인교육으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이 글에서는 보통교육, 즉 초중등 과학기술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어떤 조치들을 취했는지 살펴본다.
북이 초중등 과학기술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취한 핵심 조치는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 실시와 수학·과학기술 교육시간 확대이다.
북은 1970년대 초부터 유치원 1년, 소학교 4년, 중학교 6년으로 구성된 11년제 의무교육을 40년 남짓 실시해왔다. 그러다가 2012년 9월 소학교를 1년 늘리고 중학교를 초급중학교 3년과 고급중학교 3년으로 분리한 12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교과서 개정, 기초과학과 컴퓨터 교육 확대 등의 준비를 거쳐 2014년부터 12년제를 실시하고 있다. 즉, 북의 공민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좋든 싫든 학교를 1년 더 다니게 되었다.
수학, 과학기술, IT 수업 확대
의무교육 기간 연장과 함께 북은 교육과정도 개편하여 수학, 과학기술 수업 비중을 높였다. 국내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수학+과학기술+정보기술 수업의 비중이 초급중학교에서 256시간(7.6%p), 고급중학교에서는 224시간(5.3%p) 늘었다고 한다(아래 표 참고). 연간 70~80시간 정도 증가한 것이다.
조정아 외, [김정은 시대 북한의 교육정책, 교육과정, 교과서] (통일연구원, 2015), 42-44쪽에서 정리.
위 연구에 따르면 교과서도 크게 바뀌었다. 최신 과학기술 내용이 반영되었을 뿐 아니라, 주입식 서술 대신 학생들이 직접 고민하고 탐구하며 통합적 사고력과 응용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교과서 내용이 꽤 어려워졌다는 평가도 있다.
북이 이처럼 중학교의 과학기술 교육을 크게 확대한 이유는 이 과정이 대학 진학 또는 직장 배치 직전 과정이기 때문이다. 북은 중학생들의 전반적인 과학기술 수준을 높임으로써 자연스럽게 과학기술 실력이 좋은 대학생들도 많아지고 우수한 전문가가 될 가능성도 커지기를 바란다. 대학에 가지 않고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지식형 근로자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평양중등학원을 시작으로 순차적 교육환경 개선
북은 학생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교육환경 개선도 진행하고 있는데, 그 출발은 평양중등학원이다. 2015년 9월부터 약 10개월 동안 진행된 현대화를 통해 건물 11개 동이 새로 지어졌고, 컴퓨터와 시청각 기자재 갖춘 교실과 각종 디지털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전자열람실이 들어섰다. 실험·실습을 강화하기 위해 물리, 화학, 생물, 기초기술 등 과학기술 과목별 실습실도 만들어졌다.
현대화를 마친 평양중등학원 전경 (로동신문, 2016.7.3.)
평양중등학원 교실 (조선의 오늘, 2016.8.28.)
평양중등학원의 전자열람실, 영어 실습실, 생물 실습실, 화학 실습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조선의 오늘, 2016.7.18.)
북은 모든 학교를 동시에 현대화할 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2019년까지는 순차적으로 현대화를 진행해왔다. 평양중등학원을 표준으로 삼아 2017년 전국 60여 개 학교를, 2018년에는 140여 개 학교를 현대화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2019년 9월 제14차 전국교원대회를 치른 뒤 2020년부터는 교육환경 개선을 주요 국정 과제로 강조하며 도별 수십 개, 전국적으로 수백 개 학교의 현대화를 동시에 진행 중이다.
실천형 인재 양성을 위한 기술고급중학교 신설, 확대
중등 과학기술 교육 강화를 위한 북의 조치에는 기술고급중학교 신설도 있다. 북이 '새로운 교종'이라고 강조하는 기술고급중학교는 각 지역의 경제와 지리적 특성에 맞는 기술과목들을 가르치는 학교이다.
황해제철연합기업소·김책제철연합기업소 등 대형 제철소가 있는 지역에서는 금속, 북창화력발전소와 같은 대규모 화력발전소가 있는 곳에서는 전기, 장천남새전문협동농장처럼 대표적인 협동농장이 있는 지역에서는 농산 관련 과목을 좀 더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것이다.
북은 기술고급중학교를 통해 각 지역 특색에 맞는 경제발전을 이끌 기술인력, 북의 표현으로는 "실천형 인재"를 길러내려 한다.
2017년 각지에서 신설 또는 기존 고급중학교의 전환을 통해 수십 개의 기술고급중학교가 처음 문을 열었다. 2020년에는 IT 특성화고등학교라 할 수 있는 정보기술 부문 기술고급중학교를 도, 시, 군에 하나씩 총 190여 개 세웠다고 한다.
여기에도 신설된 곳과 기존 중학교에서 전환된 곳들이 있다고 알려졌다. 북은 이곳들을 통해 각 지역의 정보화를 담당할 IT 인력을 양성하겠다고 한다.
장천기술고급중학교 개교식(좌)과 이 학교 농산기초실습실(우) (서광, 2017.4.12.)
북은 2021년에도 화학 부문의 기술고급중학교를 수십 개 늘렸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고급중학교 "기술반"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즉, 기술고급중학교로 전환하지 않은 일반 고급중학교에도 기술반을 설치함으로써 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술교육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로동신문에 따르면 2022년에는 "기술고급중학교(기술반)" 140여 개가 새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북 자체의 비판적 평가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북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전민과학기술인재화" 기치를 내걸고 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과학기술 교육 강화를 일관되게 시도해왔다. 특히 초중등교육에서는 의무교육 1년 연장 및 수학·과학기술 비중 제고, 교육환경 개선, 현장 기술인력 양성을 위한 기술고급중학교 신설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북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북은 2019년 9월 제14차 전국교원대회에서 교육의 질적 향상이 지지부진해서 국가에 필요한 고급 인재를 많이 길러내지 못했고, 이로 인해 과학기술 수준도 별로 높아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최근 시정연설에서도 교육 부문 비판
북은 교원대회 이후 교원의 자질 향상을 기본으로 한 교육의 질적 수준 제고, 그리고 이에 기초한 과학기술 발전을 핵심 국정 과제로 추진해왔다. 톺아보기 7에서 언급한 대로 북이 최근 교원양성 부문의 학술일원화를 부쩍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2022년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국가 교육사업이 개선되고는 있지만, 그 질적 수준이 아직도 세계적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교육이 여전히 교육 그 자체를 위한 교육, 점수 평가를 위한 교육에 국한되어 실천 능력을 갖춘 인재를 충분히 양성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전민과학기술인재화 시도는 계속할 것
그래도 위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인재와 과학기술이 국가의 전면부흥을 위한 핵심 요인임을 또다시 부각했다. 12년제 의무교육의 질을 크게 높여 학생들의 실력을 향상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즉, 북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전민과학기술인재화,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과학기술 교육의 강화 및 수준 제고 시도를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