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당면한 문제" - 기후변화에 대한 북의 인식과 대응
[연재] 북 과학기술 톺아보기 (10)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통일뉴스 기고글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6418
북, 유엔에 VNR 제출
2021년 7월 북이 ‘지속 가능 발전 목표’ 이행 상황을 담은 자발적 국가보고서(Voluntary National Review, VNR)를 유엔에 제출했다. 잘 알려진 대로 지속 가능 발전 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는 2015년 9월 제70차 유엔 총회에서 유엔 회원국들이 2016년 시작해서 2030년까지 달성하기로 결정한 의제이다. 빈곤 종식, 기아 퇴치, 양질의 교육, 성 평등, 청정에너지, 지속 가능한 소비와 생산, 기후변화 대응 등 17개 의제와 169개 세부목표로 구성되어 있다.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 (출처: 이클레이 한국사무소, https://www.icleikorea.org/_03/0501)
북이 제출한 VNR을 보면 다른 유엔 회원국들과 마찬가지로 북도 지속 가능한 농업 발전, 물과 위생의 지속 가능한 접근 보장,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영향에 대처 등 유엔의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를 그대로, 또는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조금 바꿔서 추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엔과 북의 지속가능개발목표 비교표 (“DPRK VNR” 번역본 (북민협, 2021), 8-9쪽)
김정은 시대의 북이 고질적인 에너지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 친환경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음이 국내 언론에도 심심치 않게 보도되었다. 여기 더해 북이 VNR을 제출함으로써, 북도 기후변화를 포함한 환경문제에 대응하고 있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 대중적으로 좀 더 알려지게 되었다.
김일성 집권기부터 환경문제에 관심
환경문제에 대한 북의 관심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시작된 것은 아니다. 북은 김일성 집권기인 1950년대에 이미 경제적 목적을 위해서든, 인민 생활 향상을 위해서든 환경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1950년대 말에는 ‘자원’으로서 동식물 보호 증식에 대한 연구가 생물학의 주요 과제로 자리 잡았다.
북은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서도 1970년대부터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이상기후와 그로 인한 피해에 주목해왔고, 그 연장선에서 1994년 <유엔기후변화협약>에 서명했다. 1994년 이후에도 북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의 보고서 내용을 포함해서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왔다.
1990년대 중후반의 뼈저린 경험
기후위기에 대한 북의 경각심은 1990년대 중후반 대규모 자연재해를 거의 매년 경험하면서 크게 강화되었다.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에 따르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1995년의 대홍수로 북이 입은 피해는 달러로 환산하면 250억 달러 이상이고, 이는 1970~2019년 50년 동안 세계에서 발생한 자연재해 중 경제적 피해 규모 10위 수준이라고 한다.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가 2021년 발간한 보고서의 표지(왼쪽). 1995년 홍수로 북이 입은 경제적 피해 규모가 세계 10위 수준이었음을 보여준다(아래).
북은 1998년에도 여러 번의 폭우와 강풍 때문에 탄광 갱도 180여 곳이 물에 잠기고 고압 송전선・통신선로들이 대거 파괴되는 등 해마다 재난 피해를 입었다. 이 시기에 북은 스스로 ‘고난의 행군’이라 불렀을 정도로 극심한 경제난을 겪었다.
'재난 피해의 더 큰 원인은 국토관리사업의 부실'
위와 같은 경험을 통해서 북은 그간 자신들이 해왔던 국토관리사업이 부실했음을 뼈저리게 확인했다. 1995, 1996년 연이어 홍수피해를 겪은 직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엄청난 홍수피해가 일차적으로는 유례없는 폭우 때문이지만, 더 큰 원인은 그간 산림 보호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후위기는 바로 현재 직면한 문제'
나아가 북은 기후변화로 인한 악영향이 바로 현재 자신들의 문제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의 기상청에 해당하는 북 기상수문국 전문가가 2000년 9월 로동신문에 실은 글에 잘 드러나 있다. 이 글에 따르면 20세기 지구 전체의 평균기온이 0.6℃ 상승할 때 북의 평균기온은 1.9℃, 특히 겨울철엔 4.7℃ 높아졌고, 최근으로 올수록 이상고온현상과 가뭄이 자주 발생했다고 한다. 또 대홍수가 발생한 1995년을 제외하면 1990년대의 연평균 강수량이 크게 줄었는데, 동시에 일부 지역에는 “무더기비”, 즉 집중호우가 내렸다고 전했다. 이 글은 자신들이 이와 같은 재난을 겪게 된 원인이 바로 지구온난화이고, 이는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기 때문에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 관련 제도적 기반과 연구개발 강화
실제로 김정일 집권기에 북은 김일성 집권기에 제정된 환경보호법을 5회 개정했고, 수산법・명승지, 천연기념물보호법・바다오염방지법・국토계획법・환경영향평가법・대동강오염방지법 등 환경 관련 법률을 다수 제정했다. 2005년 4월 교토의정서에 가입하는 등 환경과 관련한 국제협약 참여도 확대했다.
1998년부터 5년씩 세 차례 실시된 김정일 집권기의 과학기술발전 5개년 계획에도 환경 및 기후변화 관련 과제가 꾸준히 포함되었다. 예컨대 제1차 5개년 계획(1998~2002)에는 풍력발전 개발 및 풍력발전소 건설, 생물농약 개발 등이 있었다.
2차 5개년 계획(2003~2007)에서는 아래 표와 같이 신에너지 관련 과제가 크게 늘었고, 산림복구를 위한 나무 모 생산의 공업화, 환경감시에 컴퓨터・위성 자료・지리정보체계(GIS) 활용 확대, 도시 오수정화 시설 현대화, 주요 공업 부문의 에너지 소비 저감기술 개발 등이 포함되었다.
제2차 과학기술 발전 5개년 계획의 신에너지 개발 과제
국가 경제의 체질 변화도 모색
환경보호와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북의 관심은 시간이 흐르면서 국가 경제 전반의 체질 변화를 모색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신문 기사나 외국 전문가 초빙 강습 등을 통해서 세계 각국의 환경정책과 기후변화 대응 움직임에 계속 주목하다가, 2005년경부터는 중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의 절약형 경제, 절약형 사회 건설 시도도 소개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절약형 사회’ 건설 시도를 소개한 기사들 (로동신문, 3005.12.29., 2006.6.24.)
2009년 "저탄소 경제", "녹색산업" 등장
그러다가 2009년부터는 많은 나라가 "저탄소 경제", "녹색산업"으로 전환을 시도한다는 기사들이 등장했고, 이런 추세에 맞게 북의 경제도 바뀌어야 한다고 독려하는 논설이 실리기도 했다. 북의 대표적인 경제 이론지인 <경제연구>에도 "순환경제의 발전은 현시기 경제를 끊임없이 발전시키기 위한 중요한 요구"(2009년 1호), "환경상품의 본질적내용과 특징"(2010년 3호), "경제의 저탄소화는 새로운 경제발전방향"(2011년 4호) 등 친환경 경제, 저탄소 경제 관련 논문이 꾸준히 게재되었다.
김정일 위원장도 2010과 2011년 두 해 연속 단천마그네샤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이 공장이 “경소마그네샤”(경소 마그네시아, calcined magnesia)로 각종 건재를 생산한 것을 치하하였다. 그리고 ‘경소 마그네샤로 만든 제품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녹색 건재’라고 하면서, 저탄소 경제・녹색경제로 바뀌는 세계적 추세에 맞게 녹색 제품을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천마그네샤공장 (조선의 오늘, 2016.7.19.)
"저탄소 경제"와 후계자 김정은
저탄소 경제, 녹색산업이 북 매체에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2009년은 ‘후계자 김정은’이 등장한 시점이기도 하다. 북은 이때부터 3년 동안 당의 의사결정 구조를 점진적으로 정상화하고, 김정일 집권기의 정책과 그 성과, 미완성 과제 등을 기초로 해서 김정은 시대의 노선과 정책을 정립하는 등 김정은 후계체제를 압축적으로 준비했다.
이 시기에 저탄소 경제, 녹색산업을 새로운 경제발전 방향으로 강조한 것도 김정일 집권기의 환경 담론, 환경정책과 그 성과, 과제를 정리해서 김정은 시대의 국정 목표로 정립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김정일-김정은 환경정책의 연속성
그래서 김정은 시대의 북은 김정일 집권기 때와 마찬가지로 기후위기가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유엔에 제출한 VNR에서도 2015년의 가뭄, 폭우, 대형 우박, 2016년의 역대 최대 호우로 인한 두만강 범람, 2018에서 20년 매년 발생한 수십 일 간의 혹서-태풍-홍수 등 지난 10년 동안 해마다 하나 이상의 자연재해를 겪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자신들이 극심한 이상기후의 발생 빈도가 높은 나라 중 하나로서 인명 피해, 농업 파괴 등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기후변화가 당면한 문제라는 인식을 보여주는 김정은 집권 초기의 기사 (로동신문, 2013.7.15.)
2015~2020년 북의 인구 10만 명 당 재해로 인한 사망자, 실종자 비율 (“DPRK VNR" 번역본, 40쪽)
환경 관련 법률 대폭 확대
김정은 시대의 북은 위와 같은 인식에 기초해서 대기오염방지법(2012), 재생에네르기법(2013), 재자원화법(2020) 등 환경 관련 법률을 다수 제정했다. 환경보호법, 대동강오염방지법, 바다오염방지법 등 기존 법률도 개정을 통해 내용을 대폭 확대했다.
이와 함께 북은 경제 관련 법률에도 환경 관련 조항들을 추가했다. 예를 들어 2014년 건설법을 개정하면서 '최신 녹색 건축기술 도입'을 의무화하는 조항을 신설했고, 2020년에는 기업소법에 '절약형 생산체계 도입'을 명시했다. 2021년 채택된 금속공업법과 화학공업법에는 '재자원화'가 주요 원칙 또는 법적 의무로 규정되었고, 같은 해 만들어진 시, 군 발전법에도 절약형 생산체계 도입・환경보호 관련 조항이 다수 들어 있다.
'절약형 경제'가 궁극적인 지향
위 법률 내용에서도 드러났듯이 북은 에너지, 자원, 노동력을 절약하는 ‘절약형 생산방식’, ‘녹색 생산방식’의 확산을 경제의 궁극적인 지향으로 강조하고 있다. 북은 절약형 경제를 환경보호 방안, 기후변화 대응 방안일 뿐 아니라 자원 부족 문제의 해결책도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북은 각종 절약 기술과 친환경 에너지 기술을 생산현장에 도입함으로써 자원과 노동력 투입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려 한다.
북은 김정일 집권기부터 강조한 재해관리의 정보화, 즉 정보통신기술과 위성 정보를 이용한 각종 자연재해 감시 및 예보, 농업 예보 등에도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
북의 기상예보 서비스들 (조선의 오늘, 2018.1.24)
이상의 대응 방안은 대부분 북이 유엔에 제출한 VNR에도 담겨 있다. 따라서 북이 2030년까지 기후변화 대응, 절약형 경제 관련 목표를 얼마나 달성할 수 있을지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