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이 되기 전에, 더 늦기 전에,
평화를 구해야 합니다
이연희 사무총장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은 정전협정을 맺는 것으로 일단락됐습니다. 정전 혹은 휴전 후에는 통상 전쟁 당사들이 평화협정을 체결하지만 한반도는 지난 69년 동안 평화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정전'은 전쟁의 일시 중단 상태이긴 하지만 언제든 '적대' 행위가 가능한 상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안전하지 않습니다. 지난 69년간 정전체제가 만든 적대와 대결로부터 우리 국민뿐 아니라 남과 북, 해외동포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전쟁을 끝낼 기회는 있었습니다. 지난 2018년 남북, 북미 정상은 공히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 구축'을 약속한 바 있습니다. 남과 북 정상은 '한반도에 더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전 세계 앞에 천명했고, 북미 정상은 '양국 국민의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북미 관계를 수립하기로 노력'하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화와 협상은 멈춰섰고,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신냉전으로 가는 세계
시대도 정권도 바뀌었음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안타깝게도 남북, 북미간 대화와 협상이 멈춰선 사이, 세계는 신냉전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중, 미러간 패권경쟁이 전쟁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음을 보여줬고 진영 대결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위기에 더해 전쟁까지 맞닥뜨린 세계는 평화롭지 않습니다. 물가는 인상되고 공급망에 대한 우려도 커졌습니다. 미국이 NATO 동맹의 글로벌 확장과 중국을 배제하는 공급망 재편까지 추진하면서 세계는 날로 진영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적 질서의 변화 가운데서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외교정책은 사뭇 우려스럽습니다. 단 3개월 만에 한미정상회담과 나토정상회의, 한미일 정상회담이 연이어 개최되었고,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참가 선언과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 약속에 이르기까지, 진도가 너무 나갔다 싶을 만큼 이미 많은 것을 결정해버렸습니다. 한일외교장관 회담에서 한일관계 개선의 대가로 피해자인 한국이 강제동원 문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까지 한 대목에 이르면, 과히 '외교참사'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외교란 자고로 선택지를 넓히는 일이라는데, 갈수록 선택지는 줄고 있습니다. 진영화된 세계의 일방에 한국을 가두고 있는 꼴입니다.
진영외교로는 신냉전 질서에 대응할 수 없어
26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최대 수출국인 대중국 수출이 28년만에 3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미국주도 쿼드(Quad) 참여국인 인도가 러시아 제재에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나,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수출 대금을 위안화로 결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변화는 질서 가운데서 저마다의 국익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때에 윤 정부의 선택은 지나치게 편향되어 있다 못해 굴종적이기까지 합니다.
문제는 단지 경제적 영역에만 그치지는 않습니다. 한미간 확장억제 협의체 부활과 한미연합군사연습의 '정상화'는 어떻습니까. 북미, 남북간 협상이 진행되던 2018년 이래 협상을 위해 축소되었던 연합훈련의 규모와 강도를 확대, 강화하겠다는 것입니다.
신냉전이 시작되었으니 군비경쟁은 필연적이며 동맹간 군사훈련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으로 연합훈련을 연례적으로 실시하면서 한반도 긴장도 연례적으로 고조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변화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한미연합군사연습의 위험성은 더 커졌습니다.
이미 한국은 세계 군사력 5위의 군사강국입니다. 군사력 1위인 미국과 뒤를 잇는 러시아, 중국, 일본까지 신냉전 질서의 주요 행위자들이 모두가 만나는 곳,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가 신냉전의 최전선이 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가능합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 실현을 위한 한국과 일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해왔습니다. '세계 최대규모의 훈련'인 한미연합군사연습은 북한과 중국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며, 한반도가 신냉전의 최전방이라는 것이 기정사실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위험천만합니다.
70년이 되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신냉전 질서의 일방에 편승해 대결에 휩쓸리는 정책으로는 평화를 구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의 관심은 동맹의 이익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에만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국익과 한국의 국익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도 현 정부는 대미 편향 외교로 일관함으로써 한반도에서의 주요 행위자이기를 포기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평화적 수단을 준비하지 않으면 평화적 해결도 어렵습니다. 남과 북이 화해하고 협력하며 함께 번영하는, 그 꿈을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은 것은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만이 우리 국민의 안녕과 미래를 지켜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년이면 정전 70년이 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신냉전이 우리의 삶에 훅 들어왔듯, 한반도의 위기가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걱정입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평화는 오지 않습니다. 전쟁을 걱정하는 70년이 아니라 평화를 도모하는 70년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 지, 지금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더 이상의 외교 참사를 막고, 대결이 아니라 평화를 선택하는 일에 남과 북 해외,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연대와 행동이 절실합니다. 70년이 되기 전에.
*이 글은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e-정토에 함께 실었습니다.
70년이 되기 전에, 더 늦기 전에,
평화를 구해야 합니다
이연희 사무총장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은 정전협정을 맺는 것으로 일단락됐습니다. 정전 혹은 휴전 후에는 통상 전쟁 당사들이 평화협정을 체결하지만 한반도는 지난 69년 동안 평화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정전'은 전쟁의 일시 중단 상태이긴 하지만 언제든 '적대' 행위가 가능한 상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안전하지 않습니다. 지난 69년간 정전체제가 만든 적대와 대결로부터 우리 국민뿐 아니라 남과 북, 해외동포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전쟁을 끝낼 기회는 있었습니다. 지난 2018년 남북, 북미 정상은 공히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 구축'을 약속한 바 있습니다. 남과 북 정상은 '한반도에 더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전 세계 앞에 천명했고, 북미 정상은 '양국 국민의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북미 관계를 수립하기로 노력'하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화와 협상은 멈춰섰고,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신냉전으로 가는 세계
시대도 정권도 바뀌었음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안타깝게도 남북, 북미간 대화와 협상이 멈춰선 사이, 세계는 신냉전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중, 미러간 패권경쟁이 전쟁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음을 보여줬고 진영 대결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위기에 더해 전쟁까지 맞닥뜨린 세계는 평화롭지 않습니다. 물가는 인상되고 공급망에 대한 우려도 커졌습니다. 미국이 NATO 동맹의 글로벌 확장과 중국을 배제하는 공급망 재편까지 추진하면서 세계는 날로 진영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적 질서의 변화 가운데서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외교정책은 사뭇 우려스럽습니다. 단 3개월 만에 한미정상회담과 나토정상회의, 한미일 정상회담이 연이어 개최되었고,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참가 선언과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 약속에 이르기까지, 진도가 너무 나갔다 싶을 만큼 이미 많은 것을 결정해버렸습니다. 한일외교장관 회담에서 한일관계 개선의 대가로 피해자인 한국이 강제동원 문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까지 한 대목에 이르면, 과히 '외교참사'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외교란 자고로 선택지를 넓히는 일이라는데, 갈수록 선택지는 줄고 있습니다. 진영화된 세계의 일방에 한국을 가두고 있는 꼴입니다.
진영외교로는 신냉전 질서에 대응할 수 없어
26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최대 수출국인 대중국 수출이 28년만에 3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미국주도 쿼드(Quad) 참여국인 인도가 러시아 제재에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나,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수출 대금을 위안화로 결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변화는 질서 가운데서 저마다의 국익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때에 윤 정부의 선택은 지나치게 편향되어 있다 못해 굴종적이기까지 합니다.
문제는 단지 경제적 영역에만 그치지는 않습니다. 한미간 확장억제 협의체 부활과 한미연합군사연습의 '정상화'는 어떻습니까. 북미, 남북간 협상이 진행되던 2018년 이래 협상을 위해 축소되었던 연합훈련의 규모와 강도를 확대, 강화하겠다는 것입니다.
신냉전이 시작되었으니 군비경쟁은 필연적이며 동맹간 군사훈련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으로 연합훈련을 연례적으로 실시하면서 한반도 긴장도 연례적으로 고조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변화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한미연합군사연습의 위험성은 더 커졌습니다.
이미 한국은 세계 군사력 5위의 군사강국입니다. 군사력 1위인 미국과 뒤를 잇는 러시아, 중국, 일본까지 신냉전 질서의 주요 행위자들이 모두가 만나는 곳,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가 신냉전의 최전선이 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가능합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 실현을 위한 한국과 일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해왔습니다. '세계 최대규모의 훈련'인 한미연합군사연습은 북한과 중국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며, 한반도가 신냉전의 최전방이라는 것이 기정사실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위험천만합니다.
70년이 되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신냉전 질서의 일방에 편승해 대결에 휩쓸리는 정책으로는 평화를 구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의 관심은 동맹의 이익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에만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국익과 한국의 국익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도 현 정부는 대미 편향 외교로 일관함으로써 한반도에서의 주요 행위자이기를 포기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평화적 수단을 준비하지 않으면 평화적 해결도 어렵습니다. 남과 북이 화해하고 협력하며 함께 번영하는, 그 꿈을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은 것은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만이 우리 국민의 안녕과 미래를 지켜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년이면 정전 70년이 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신냉전이 우리의 삶에 훅 들어왔듯, 한반도의 위기가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걱정입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평화는 오지 않습니다. 전쟁을 걱정하는 70년이 아니라 평화를 도모하는 70년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 지, 지금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더 이상의 외교 참사를 막고, 대결이 아니라 평화를 선택하는 일에 남과 북 해외,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연대와 행동이 절실합니다. 70년이 되기 전에.
*이 글은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e-정토에 함께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