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위기, 평화위기 부르는 불평등 사회
이연희 사무총장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던 지난 8월, 우리는 상상치도 못했던 비보를 접했습니다. 보도를 통해 많이 알려진 대로, 신림동에 살던 가족, 홍수지님과 초등학생 딸, 발달장애를 가진 언니는 끝내 폭우에 잠긴 반지하집을 빠져나오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며 엄마였던, 부루벨 코리아 노동조합의 활동가였고, 서울겨레하나의 회원이시기도 했던 님의 죽음은 머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충격이었습니다. 왜, 어떻게, 이토록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지, 어디를 향해야 할지 모를 슬픔과 분노를 진정하기 힘들었습니다.
반지하가 주거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논의는 종종 있어 왔습니다. 기생충이 세계적인 영화가 되고 나서는 세계적인 관심 속에 반지하가 조명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뿐, ‘왜 빠져나오지 못했냐’는 윤석열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반문 속에 반지하 주거대책이 세워지고 있지만 ‘이번이라고 다르겠어?’하는 생각부터 듭니다. 왜냐면 님의 죽음이 단지 반지하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재난은 불평등합니다
피케티 교수의 세계 불평등 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상위 10%가 소득의 절반에 달하는 46.5%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각각 45.5%, 44.9%를 차지한 미국, 일본을 제치고 선두에 올라섰습니다. 비교적 부의 편중이 덜하다고 할 수 있는 독일, 프랑스의 37.1%, 32.2%도 사실 심각한 편이지만, 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불평등은 구조가 만들어 냅니다. 서울 하늘아래 반지하가 아닌 제집 한 칸을 갖기는 하늘에서 별따기입니다. 직장인 평균임금(365만 3000원) 기준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집을 사는데 걸리는 기간은 2016년 11.8년에서 지난해 21.0년으로 9.2년으로 증가했고,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8.1년에서 11.6년으로 3.5년이 늘어났습니다.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으는 것도 불가능할 뿐 아니라 200만원이 안되는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에게 평생 집 한 칸은 꿈도 못 꿀 일입니다.
어떤 직업을 갖든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조차 주지 않은 사회가 과연 정상인지, 또 우리가 가져야 하는 상대적 박탈감과 경쟁만 남은, 공동체가 파괴된 사회는 과연 미래가 있긴 한지, 물어야 합니다.
반지하를 없애면 갈 곳이 없는 거주자들을 위해 공공임대주택 확충 논의가 계속되어왔지만 자본의 논리 앞에 번번히 말잔치에 그쳤습니다. 반지하 대책을 세운다고 호들갑인 윤석열 정부는 보조금을 줄 지언정 새로 짓는 주택의 상당 부분을 분양으로 공급하겠다는 방침을 철회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상위 10%의 부를 만드는데 매진하는 사회
지난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근로자는 321만 5000명(15.3%)으로 전체 근로자의 15.3%에 달합니다. 그중 반 수 이상(54.8%)이 농민입니다. 그런데 최근 수입쌀 물량 증가로 쌀값이 45년만에 최대치로 폭락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입니다. 밥 한공기 300원 받는 게 농민들의 요구라니 참 안타깝다 못해 어이가 없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더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식량문제는 더 중요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나랏돈을 써서라도 지켜야 하는 게 식량주권이라는 생각은 아예 없을뿐더러 농민은 죽어도 좋다, 너희가 희생하라는 식이니 온 사회가 ‘상위 10%의 부를 어떻게 만들어 줄까’를 위해 내달리고 있는 격입니다.
반지하는 1970년대 정부가 건축법을 개정해 국가비상사태 시 모든 신축 저층 아파트와 주택의 지하를 벙커로 사용할 것을 의무화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반지하 공간을 사람이 사는 공간으로 임대하는 것은 불법이었지만 1980년대 주택 공급이 부족해 지면서 당시 정부가 이 공간을 거주시설로 합법화하게 됩니다. 국가비상사태는 당연히 북한의 남침을 의미합니다. 반지하가 분단체제에서 비롯되었다니 참 씁쓸한 일입니다.
민생위기, 평화위기와 함께 오고 있습니다
민생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불평등은 위기대처 능력과 회복탄력성을 떨어뜨립니다. 당장 공급망위기에 경제가 휘청이는 일이 닥치거나 그나마 집을 가진 서민들의 가계부채가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예측이 많습니다. 신냉전 질서가 격화되면서 어디서 터져 나올지 모를 공급망위기와 미국이 양적완화로 인해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끌어내리기 위한 금리인상을 시작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코로나19로 본격화된 공급망위기는 미국이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기 시작하면서 심화되고 있습니다. 미국이 최근 내놓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은 인플레이션을 무력화하겠다는 표면적인 이유와 달리, 실제로는 ‘중국 견제’가 목적인 것 같습니다. ‘2024년부터 중국에서 배터리 소재와 부품을 조달한 전기차를 구매한 소비자는 보조금(대당 최대 7500달러)을 받을 수 없다’는 조건이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70~80%를 장악한 배터리 공급망에서 벗어나, 독자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당장 핵심 자재 95%를 중국에서 수입하는 현대차 등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습니다. 미국의 달러패권이 만든 금리문제도 우리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합니다.
미중패권경쟁이 세계 경제를 둘로 나누고, 대립이 격화되는 데 따라 군사적 충돌위기도 격화되는 양상입니다. 민생위기와 함께 평화위기도 빠르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미동맹이 미국주도 대중국봉쇄에까지 연루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미국에만 의존하는 경제구조로는 민생을 살리기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한미동맹에만 의존하는 외교안보전략이 한반도 평화를 지켜주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 대안은 보이지 않지만 미국의 일극패권 시대가 끝나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 곳에서 삶을 꾸려온 님을 생각해 봅니다.
잘 알지 못하는 님이지만 언론보도와 말들을 통해 전해진 '참 따뜻한 사람' 인 님의 삶은 많은 걸 생각하게 했습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언니를 위해 복지시설 곁에 안정적 거처를 확보하고 싶었다는 것, 초등학생 딸을 위해 예쁜 방을 따로 꾸며주며 기뻐했다는 것, 결코 만만치 않은 가정환경이지만 노조에서 활동하며 더 나은 사업장, 더 나은 사회를 꿈꿨다는 것, 평화통일단체인 겨레하나를 후원하며 응원했다는 것. 더 나은 삶과 미래를 위해 애써온 님의 삶의 궤적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주거권은 생명권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은 여름,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그렇게 더 나은 삶을 위해, 삶을 가꿔 온 우리들,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힘을 보태온 우리들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소중한 것들은 그런 누군가의 애씀들이 모인 결과일 것입니다.
민생위기, 평화위기와 함께 항쟁으로 일군 민주주의까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런 수많은 님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2022년 하반기 민생위기, 평화위기에 맞선 우리들의 행동을 이제 시작합니다.
민생위기, 평화위기 부르는 불평등 사회
이연희 사무총장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던 지난 8월, 우리는 상상치도 못했던 비보를 접했습니다. 보도를 통해 많이 알려진 대로, 신림동에 살던 가족, 홍수지님과 초등학생 딸, 발달장애를 가진 언니는 끝내 폭우에 잠긴 반지하집을 빠져나오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며 엄마였던, 부루벨 코리아 노동조합의 활동가였고, 서울겨레하나의 회원이시기도 했던 님의 죽음은 머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충격이었습니다. 왜, 어떻게, 이토록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지, 어디를 향해야 할지 모를 슬픔과 분노를 진정하기 힘들었습니다.
반지하가 주거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논의는 종종 있어 왔습니다. 기생충이 세계적인 영화가 되고 나서는 세계적인 관심 속에 반지하가 조명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뿐, ‘왜 빠져나오지 못했냐’는 윤석열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반문 속에 반지하 주거대책이 세워지고 있지만 ‘이번이라고 다르겠어?’하는 생각부터 듭니다. 왜냐면 님의 죽음이 단지 반지하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재난은 불평등합니다
피케티 교수의 세계 불평등 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상위 10%가 소득의 절반에 달하는 46.5%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각각 45.5%, 44.9%를 차지한 미국, 일본을 제치고 선두에 올라섰습니다. 비교적 부의 편중이 덜하다고 할 수 있는 독일, 프랑스의 37.1%, 32.2%도 사실 심각한 편이지만, 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불평등은 구조가 만들어 냅니다. 서울 하늘아래 반지하가 아닌 제집 한 칸을 갖기는 하늘에서 별따기입니다. 직장인 평균임금(365만 3000원) 기준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집을 사는데 걸리는 기간은 2016년 11.8년에서 지난해 21.0년으로 9.2년으로 증가했고,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8.1년에서 11.6년으로 3.5년이 늘어났습니다.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으는 것도 불가능할 뿐 아니라 200만원이 안되는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에게 평생 집 한 칸은 꿈도 못 꿀 일입니다.
어떤 직업을 갖든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조차 주지 않은 사회가 과연 정상인지, 또 우리가 가져야 하는 상대적 박탈감과 경쟁만 남은, 공동체가 파괴된 사회는 과연 미래가 있긴 한지, 물어야 합니다.
반지하를 없애면 갈 곳이 없는 거주자들을 위해 공공임대주택 확충 논의가 계속되어왔지만 자본의 논리 앞에 번번히 말잔치에 그쳤습니다. 반지하 대책을 세운다고 호들갑인 윤석열 정부는 보조금을 줄 지언정 새로 짓는 주택의 상당 부분을 분양으로 공급하겠다는 방침을 철회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상위 10%의 부를 만드는데 매진하는 사회
지난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근로자는 321만 5000명(15.3%)으로 전체 근로자의 15.3%에 달합니다. 그중 반 수 이상(54.8%)이 농민입니다. 그런데 최근 수입쌀 물량 증가로 쌀값이 45년만에 최대치로 폭락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입니다. 밥 한공기 300원 받는 게 농민들의 요구라니 참 안타깝다 못해 어이가 없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더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식량문제는 더 중요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나랏돈을 써서라도 지켜야 하는 게 식량주권이라는 생각은 아예 없을뿐더러 농민은 죽어도 좋다, 너희가 희생하라는 식이니 온 사회가 ‘상위 10%의 부를 어떻게 만들어 줄까’를 위해 내달리고 있는 격입니다.
반지하는 1970년대 정부가 건축법을 개정해 국가비상사태 시 모든 신축 저층 아파트와 주택의 지하를 벙커로 사용할 것을 의무화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반지하 공간을 사람이 사는 공간으로 임대하는 것은 불법이었지만 1980년대 주택 공급이 부족해 지면서 당시 정부가 이 공간을 거주시설로 합법화하게 됩니다. 국가비상사태는 당연히 북한의 남침을 의미합니다. 반지하가 분단체제에서 비롯되었다니 참 씁쓸한 일입니다.
민생위기, 평화위기와 함께 오고 있습니다
민생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불평등은 위기대처 능력과 회복탄력성을 떨어뜨립니다. 당장 공급망위기에 경제가 휘청이는 일이 닥치거나 그나마 집을 가진 서민들의 가계부채가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예측이 많습니다. 신냉전 질서가 격화되면서 어디서 터져 나올지 모를 공급망위기와 미국이 양적완화로 인해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끌어내리기 위한 금리인상을 시작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코로나19로 본격화된 공급망위기는 미국이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기 시작하면서 심화되고 있습니다. 미국이 최근 내놓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은 인플레이션을 무력화하겠다는 표면적인 이유와 달리, 실제로는 ‘중국 견제’가 목적인 것 같습니다. ‘2024년부터 중국에서 배터리 소재와 부품을 조달한 전기차를 구매한 소비자는 보조금(대당 최대 7500달러)을 받을 수 없다’는 조건이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70~80%를 장악한 배터리 공급망에서 벗어나, 독자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당장 핵심 자재 95%를 중국에서 수입하는 현대차 등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습니다. 미국의 달러패권이 만든 금리문제도 우리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합니다.
미중패권경쟁이 세계 경제를 둘로 나누고, 대립이 격화되는 데 따라 군사적 충돌위기도 격화되는 양상입니다. 민생위기와 함께 평화위기도 빠르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미동맹이 미국주도 대중국봉쇄에까지 연루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미국에만 의존하는 경제구조로는 민생을 살리기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한미동맹에만 의존하는 외교안보전략이 한반도 평화를 지켜주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 대안은 보이지 않지만 미국의 일극패권 시대가 끝나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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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서 삶을 꾸려온 님을 생각해 봅니다.
잘 알지 못하는 님이지만 언론보도와 말들을 통해 전해진 '참 따뜻한 사람' 인 님의 삶은 많은 걸 생각하게 했습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언니를 위해 복지시설 곁에 안정적 거처를 확보하고 싶었다는 것, 초등학생 딸을 위해 예쁜 방을 따로 꾸며주며 기뻐했다는 것, 결코 만만치 않은 가정환경이지만 노조에서 활동하며 더 나은 사업장, 더 나은 사회를 꿈꿨다는 것, 평화통일단체인 겨레하나를 후원하며 응원했다는 것. 더 나은 삶과 미래를 위해 애써온 님의 삶의 궤적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주거권은 생명권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은 여름,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그렇게 더 나은 삶을 위해, 삶을 가꿔 온 우리들,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힘을 보태온 우리들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소중한 것들은 그런 누군가의 애씀들이 모인 결과일 것입니다.
민생위기, 평화위기와 함께 항쟁으로 일군 민주주의까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런 수많은 님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2022년 하반기 민생위기, 평화위기에 맞선 우리들의 행동을 이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