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핵전략자산 전개와 북 핵무력정책 법령,
전쟁을 막을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연희 사무총장
미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가 지난 9월 23일 부산항에 입항했습니다. 10만톤급 레이건호는 F/A-18 슈퍼호넷 전투기를 비롯한 각종 항공기 약 90대를 탑재하고 승조원 약 5천명이나 탑승하는 '떠다니는 군사기지'로 불리는 항공모함입니다. 미국 항모가 부산 작전기지에 훈련 목적으로 입항한 건 지난 2017년 10월 이후 5년만의 일입니다.
미 핵항공모함과 연합해상훈련이 끝난 지난 9월 30일, 우리 해군은 일본 자위대와 함께 한미일 연합해상훈련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한미일 연합훈련은 동해상 독도인근에서 진행된 훈련이라는 점에서도 문제지만, 일본과의 군사협력은 타당한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강행된 훈련이라는 점에서 심각합니다.
미국의 의도는 뚜렷해 보입니다. 북핵을 명분 삼고 있지만,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구도를 만들어서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자국의 이익을 취하려는 것입니다. 이른바 '신냉전' 질서를 형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 북은 지난 9월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력정책을 법제화했습니다. 모든 핵보유국들이 핵무기의 사용 원칙과 운영에 관한 교리를 갖고 있지만 핵교리를 법으로 만들어 공개한 것을 북한이 처음입니다. 핵정책에 있어서는 가장 구체적이고 투명한 입장을 가진 나라가 된 것입니다.
눈에 띄는 점은 핵무력의 사용 범위를 억제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중대한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면 선제공격도 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한 것입니다. 2013년 처음 채택한 핵관련 법령이 자위력과 전쟁억지력을 중심에 두었다면, 이번에도 전쟁억지력에 초점을 두긴 했지만 보다 공세적인 정책을 채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반도는 이제 미국핵과 북핵이 맞붙는 '불가역적인 핵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여기에 더해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구도가 강화된다면 상황은 더 복잡하고 위험합니다.
한반도 핵시대는 불가피 한 것이었을까요? 2018년 북미는 협상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비핵화를 합의했습니다.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도 진행됐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하노이 노딜'로 잘 알려진 결렬 뒤 협상은 다시 재개되지 못했습니다. 하노이에서 미국은 북한이 요구한 ‘단계적 해법’을 거부하고 사실상 ‘선비핵화’만을 고집하면서 협상을 결렬시켰습니다. 길게는 30년, 짧게는 2018∼2019년의 북미협상을 통해 북한이 내린 결론은 대화와 협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북이 핵과 미사일 발사 유예를 철회한 것은 2021년 바이든의 대북정책까지 지켜본 이후의 일입니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불러온 결과를 북한의 도발로만 떠넘기며 미국의 대외안보전략, 즉 대중국 포위 전략의 명분으로 삼는 것은 미국의 필요이지 한반도에 살아가는 우리의 요구는 아닙니다. 미국의 이 같은 정책들은 비핵화 협상을 완전히 파탄내는 결과로 돌아왔으며, 한반도는 불가역적 핵시대로 들어서게 됐습니다. 한반도에서도 이른바 공포의 핵균형이 시작되는 걸까요?
그런데 상황은 그렇게 간단치 않습니다. 북미간 합의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대북정책을 포기하지 못한 미국이 한반도에서 무엇을 하려는가에 초점을 맞춰 보면 더 그렇습니다. 미중 패권경쟁 가운데서 대만해협이, 한반도가 제 2의 우크라이나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한반도는 다시 세계에서 가장 첨예한 지정학적 요충지로 부상하게 됐습니다.
2018, 19년 우리는 중대한 기회를 잃었습니다.
북미협상의 파탄과 미 전략자산 전개, 높아지는 한반도 주변의 긴장은 북으로 하여금 새로운 핵교리를 채택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동북아와 한반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구도를 만들어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이 북과 협상에 나설 리 없으며, 신냉전 구도가 강화되는 가운데 북이 먼저 핵을 포기할 리도 없습니다.
비핵화 협상이 끝난 현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이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미 핵전략자산 전개와 한미, 한미일 동해상 합동훈련의 대응격으로 봐야 할 북의 미사일 에 대해 더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식의 단편적인, 혹은 왜곡된 인식으로는 지금의 국면을 이해할 수도 제대로 된 해법을 내올 수도 없습니다. 한미동맹을 절대선으로 북을 적으로, 악으로 규정하고 식으로는 전쟁밖에 답이 없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사리분별없이 한미동맹에만 매달리며 외교참사를 일삼고 있는 것은 상황을 더 위태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신냉전 시대! 누가, 왜 한반도에서 전쟁으로 치닫게 될 대결구도를 만들고 있습니까? 북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북미간 핵통제협정이든, 핵방지협정이든 협상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평화를 실현할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전쟁을 막을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미 핵전략자산 전개와 북 핵무력정책 법령,
전쟁을 막을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연희 사무총장
미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가 지난 9월 23일 부산항에 입항했습니다. 10만톤급 레이건호는 F/A-18 슈퍼호넷 전투기를 비롯한 각종 항공기 약 90대를 탑재하고 승조원 약 5천명이나 탑승하는 '떠다니는 군사기지'로 불리는 항공모함입니다. 미국 항모가 부산 작전기지에 훈련 목적으로 입항한 건 지난 2017년 10월 이후 5년만의 일입니다.
미 핵항공모함과 연합해상훈련이 끝난 지난 9월 30일, 우리 해군은 일본 자위대와 함께 한미일 연합해상훈련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한미일 연합훈련은 동해상 독도인근에서 진행된 훈련이라는 점에서도 문제지만, 일본과의 군사협력은 타당한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강행된 훈련이라는 점에서 심각합니다.
미국의 의도는 뚜렷해 보입니다. 북핵을 명분 삼고 있지만,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구도를 만들어서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자국의 이익을 취하려는 것입니다. 이른바 '신냉전' 질서를 형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 북은 지난 9월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력정책을 법제화했습니다. 모든 핵보유국들이 핵무기의 사용 원칙과 운영에 관한 교리를 갖고 있지만 핵교리를 법으로 만들어 공개한 것을 북한이 처음입니다. 핵정책에 있어서는 가장 구체적이고 투명한 입장을 가진 나라가 된 것입니다.
눈에 띄는 점은 핵무력의 사용 범위를 억제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중대한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면 선제공격도 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한 것입니다. 2013년 처음 채택한 핵관련 법령이 자위력과 전쟁억지력을 중심에 두었다면, 이번에도 전쟁억지력에 초점을 두긴 했지만 보다 공세적인 정책을 채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반도는 이제 미국핵과 북핵이 맞붙는 '불가역적인 핵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여기에 더해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구도가 강화된다면 상황은 더 복잡하고 위험합니다.
한반도 핵시대는 불가피 한 것이었을까요? 2018년 북미는 협상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비핵화를 합의했습니다.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도 진행됐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하노이 노딜'로 잘 알려진 결렬 뒤 협상은 다시 재개되지 못했습니다. 하노이에서 미국은 북한이 요구한 ‘단계적 해법’을 거부하고 사실상 ‘선비핵화’만을 고집하면서 협상을 결렬시켰습니다. 길게는 30년, 짧게는 2018∼2019년의 북미협상을 통해 북한이 내린 결론은 대화와 협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북이 핵과 미사일 발사 유예를 철회한 것은 2021년 바이든의 대북정책까지 지켜본 이후의 일입니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불러온 결과를 북한의 도발로만 떠넘기며 미국의 대외안보전략, 즉 대중국 포위 전략의 명분으로 삼는 것은 미국의 필요이지 한반도에 살아가는 우리의 요구는 아닙니다. 미국의 이 같은 정책들은 비핵화 협상을 완전히 파탄내는 결과로 돌아왔으며, 한반도는 불가역적 핵시대로 들어서게 됐습니다. 한반도에서도 이른바 공포의 핵균형이 시작되는 걸까요?
그런데 상황은 그렇게 간단치 않습니다. 북미간 합의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대북정책을 포기하지 못한 미국이 한반도에서 무엇을 하려는가에 초점을 맞춰 보면 더 그렇습니다. 미중 패권경쟁 가운데서 대만해협이, 한반도가 제 2의 우크라이나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한반도는 다시 세계에서 가장 첨예한 지정학적 요충지로 부상하게 됐습니다.
2018, 19년 우리는 중대한 기회를 잃었습니다.
북미협상의 파탄과 미 전략자산 전개, 높아지는 한반도 주변의 긴장은 북으로 하여금 새로운 핵교리를 채택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동북아와 한반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구도를 만들어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이 북과 협상에 나설 리 없으며, 신냉전 구도가 강화되는 가운데 북이 먼저 핵을 포기할 리도 없습니다.
비핵화 협상이 끝난 현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이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미 핵전략자산 전개와 한미, 한미일 동해상 합동훈련의 대응격으로 봐야 할 북의 미사일 에 대해 더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식의 단편적인, 혹은 왜곡된 인식으로는 지금의 국면을 이해할 수도 제대로 된 해법을 내올 수도 없습니다. 한미동맹을 절대선으로 북을 적으로, 악으로 규정하고 식으로는 전쟁밖에 답이 없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사리분별없이 한미동맹에만 매달리며 외교참사를 일삼고 있는 것은 상황을 더 위태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신냉전 시대! 누가, 왜 한반도에서 전쟁으로 치닫게 될 대결구도를 만들고 있습니까? 북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북미간 핵통제협정이든, 핵방지협정이든 협상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평화를 실현할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전쟁을 막을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