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팔레스타인, 그리고 한반도
: 전쟁의 악순환을 끝내려면?
이연희 사무총장
1.
전 세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파괴’에 돌입했습니다. ‘하늘만 뚫린 감옥’으로 불리는 가자지구에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물과 전기, 연료마저 완전히 차단된 채 폭격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가자지구 사망자는 오늘로 8,000여명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가자지구의 인도적 지원을 촉구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부결시켰던 미국은, 지난 27일에는 휴전을 촉구하는 유엔 긴급총회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120개국이 찬성했고 한국 정부는 기권했습니다. 하마스를 규탄하는 내용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워싱턴발 기사를 그대로 베껴 쓰는 대다수 언론은 이스라엘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어떻게 억압해 왔는지는 꽤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장기 집권해 온 극우 네탄야후 정권의 팔레스타인 말살정책은 가히 인종청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서안지구 내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를 위한 군사작전이 끊임없이 계속됐고,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해마다 수백 단위로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일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마스가 이 전쟁에서 당장 승리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왜 그들은 감당하지 못할 공격을 선택했을까요? 강점된 팔레스타인의 민족해방을 위한 하마스의 공격은 기고만장한 이스라엘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극우 네타냐후 정권이 자초한 반격입니다.
전쟁과 폭력, 그 자체를 옹호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배를 경험한 우리가 지배와 폭력에 저항하는 자의 폭력을 싸잡아 비난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우리는 상해임시정부와 조선광복군, 그리고 의열단과 같은 무장독립운동 단체들을 테러조직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 전투 패배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가 자행한 조선인에 대한 잔인무도한 학살을 무장투쟁에 나선 독립군때문이라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2.
하마스의 미사일 공격을 두고 신원식 신임 국방장관은 "그보다 훨씬 강도 높은 위협에 대한민국이 놓여 있는데 그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정찰감시"라면서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 필요성을 주장했습니다. 지난 국감에서는 '군사합의를 파기하면 핵 위협이 줄어드느냐'는 질문에 "핵 위협의 증감과는 큰 관계는 없지만, 북한이 나쁜 마음을 가졌을 때 훨씬 우리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 효력 정지"라며 빠른 시간내 효력정지를 장담했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남북대화는 시작도 못했고, 남북간 합의들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9.19군사합의는 최소한의 방지턱 역할 정도는 되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헌법재판소의 ‘대북전단 위헌 결정’ 이후 윤석열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인 권영세 의원은 대북전단 살포와 확성기 방송을 허용하는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도 같은 맥락으로 읽힙니다.
대북전단 살포와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고 그나마 유지되던 군사분계선 안에서의 적대행위가 가능해진다면 최소한의 안전핀마저 사라지는 꼴입니다. 우리 기억엔 이미 잊혀졌지만 지난해 비무장지대 접경으로 미 전략폭격기가 넘나들고, 남북의 미사일이 NLL을 오가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자칫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무장충돌이 DMZ에서 발생한다면? 그 누구도 결과를 책임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마스의 공격을 한반도 상황에 빗댄 것도 어처구니없지만 남북관계 악화에 대한 진단도, 해법도 전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돌이켜 보건데, 남북관계 악화는 ‘북한의 나쁜 마음’보다 북미간 협상결렬(하노이 노딜)과 북미 협상에 기대어 별도의 남북관계 동력을 마련하지 못한 데서 시작됐다고 봐야 합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처음부터 북은 적이었고, 미국과 한미동맹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더니, 급기야 한일 군사협력까지 보태 한미일 군사협력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결합은 한일간 역사적 맥락에서도 옳지 않고, 지정학적으로도 강대국 정치에 연루를 초래하는 길이라는 점에서 위험천만합니다. 한국이 스스로 전쟁의 길로 걸어 들어가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3.
아! 팔레스타인은 전 세계를 향해 묻는 것 같습니다. 평화로 가는 길, 해법은 있습니까?
이미 해법은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두 개의 국가를 세우는 것입니다. 기만적인 자치를 종식하고 팔레스타인의 주권을 보장하고 두 나라의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극우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과거 오바마 정부 당시 잠시 거론된 적이 있지만 곧 폐기되었습니다. 미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유대인들과 군수산업, 석유산업 등 이권, 패권을 향한 미국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가 다르게 움직이듯, 이번 하마스 공격 이후 세계는 좀 달라 보입니다. 세계는 전쟁의 중단을 주문했지만, 중재자로써의 역할을 완전히 포기한 미국은 이스라엘 편에 서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이 지원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유리해 보이지만, 팔레스타인과 아랍의 대응도 만만치 않습니다. 사태가 장기화됐을 때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처럼 미국이 진퇴양난의 상황을 겪게 될 것이라는 우려섞인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패권이 약화된 자리에 억압됐던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한 저항과 투쟁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하마스 공격의 교훈은 9.19합의를 무효화하는데 있는 게 아니라 젤렌스키나 네타냐후 같은 정치권력이 국민들에게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지 깨닫는 데 있지 않을까요?
극단적 위기 상황에 놓인 팔레스타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여야 합니다.
당장의 정전은 물론, 두 개의 국가가 가능한 길을 함께 묻고 찾아야 합니다.
또한 물어야 합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의 도미노가 시작된 지금,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이자 정전 중인 한반도의 안전은 어떻습니까?
전환기, 새로운 질서로 나아가고 있는 세계에서 ‘힘에 의한 평화’와 한미일 동맹은 전쟁을 회피하는 길이 아니라 전쟁으로 가는 길, 전쟁동맹입니다.
전쟁의 악순환을 끝낼, 평화를 위한 지혜를 구할 때입니다.
아! 팔레스타인, 그리고 한반도
: 전쟁의 악순환을 끝내려면?
이연희 사무총장
1.
전 세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파괴’에 돌입했습니다. ‘하늘만 뚫린 감옥’으로 불리는 가자지구에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물과 전기, 연료마저 완전히 차단된 채 폭격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가자지구 사망자는 오늘로 8,000여명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가자지구의 인도적 지원을 촉구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부결시켰던 미국은, 지난 27일에는 휴전을 촉구하는 유엔 긴급총회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120개국이 찬성했고 한국 정부는 기권했습니다. 하마스를 규탄하는 내용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워싱턴발 기사를 그대로 베껴 쓰는 대다수 언론은 이스라엘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어떻게 억압해 왔는지는 꽤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장기 집권해 온 극우 네탄야후 정권의 팔레스타인 말살정책은 가히 인종청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서안지구 내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를 위한 군사작전이 끊임없이 계속됐고,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해마다 수백 단위로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일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마스가 이 전쟁에서 당장 승리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왜 그들은 감당하지 못할 공격을 선택했을까요? 강점된 팔레스타인의 민족해방을 위한 하마스의 공격은 기고만장한 이스라엘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극우 네타냐후 정권이 자초한 반격입니다.
전쟁과 폭력, 그 자체를 옹호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배를 경험한 우리가 지배와 폭력에 저항하는 자의 폭력을 싸잡아 비난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우리는 상해임시정부와 조선광복군, 그리고 의열단과 같은 무장독립운동 단체들을 테러조직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 전투 패배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가 자행한 조선인에 대한 잔인무도한 학살을 무장투쟁에 나선 독립군때문이라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2.
하마스의 미사일 공격을 두고 신원식 신임 국방장관은 "그보다 훨씬 강도 높은 위협에 대한민국이 놓여 있는데 그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정찰감시"라면서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 필요성을 주장했습니다. 지난 국감에서는 '군사합의를 파기하면 핵 위협이 줄어드느냐'는 질문에 "핵 위협의 증감과는 큰 관계는 없지만, 북한이 나쁜 마음을 가졌을 때 훨씬 우리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 효력 정지"라며 빠른 시간내 효력정지를 장담했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남북대화는 시작도 못했고, 남북간 합의들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9.19군사합의는 최소한의 방지턱 역할 정도는 되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헌법재판소의 ‘대북전단 위헌 결정’ 이후 윤석열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인 권영세 의원은 대북전단 살포와 확성기 방송을 허용하는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도 같은 맥락으로 읽힙니다.
대북전단 살포와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고 그나마 유지되던 군사분계선 안에서의 적대행위가 가능해진다면 최소한의 안전핀마저 사라지는 꼴입니다. 우리 기억엔 이미 잊혀졌지만 지난해 비무장지대 접경으로 미 전략폭격기가 넘나들고, 남북의 미사일이 NLL을 오가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자칫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무장충돌이 DMZ에서 발생한다면? 그 누구도 결과를 책임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마스의 공격을 한반도 상황에 빗댄 것도 어처구니없지만 남북관계 악화에 대한 진단도, 해법도 전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돌이켜 보건데, 남북관계 악화는 ‘북한의 나쁜 마음’보다 북미간 협상결렬(하노이 노딜)과 북미 협상에 기대어 별도의 남북관계 동력을 마련하지 못한 데서 시작됐다고 봐야 합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처음부터 북은 적이었고, 미국과 한미동맹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더니, 급기야 한일 군사협력까지 보태 한미일 군사협력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결합은 한일간 역사적 맥락에서도 옳지 않고, 지정학적으로도 강대국 정치에 연루를 초래하는 길이라는 점에서 위험천만합니다. 한국이 스스로 전쟁의 길로 걸어 들어가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3.
아! 팔레스타인은 전 세계를 향해 묻는 것 같습니다. 평화로 가는 길, 해법은 있습니까?
이미 해법은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두 개의 국가를 세우는 것입니다. 기만적인 자치를 종식하고 팔레스타인의 주권을 보장하고 두 나라의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극우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과거 오바마 정부 당시 잠시 거론된 적이 있지만 곧 폐기되었습니다. 미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유대인들과 군수산업, 석유산업 등 이권, 패권을 향한 미국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가 다르게 움직이듯, 이번 하마스 공격 이후 세계는 좀 달라 보입니다. 세계는 전쟁의 중단을 주문했지만, 중재자로써의 역할을 완전히 포기한 미국은 이스라엘 편에 서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이 지원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유리해 보이지만, 팔레스타인과 아랍의 대응도 만만치 않습니다. 사태가 장기화됐을 때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처럼 미국이 진퇴양난의 상황을 겪게 될 것이라는 우려섞인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패권이 약화된 자리에 억압됐던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한 저항과 투쟁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하마스 공격의 교훈은 9.19합의를 무효화하는데 있는 게 아니라 젤렌스키나 네타냐후 같은 정치권력이 국민들에게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지 깨닫는 데 있지 않을까요?
극단적 위기 상황에 놓인 팔레스타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여야 합니다.
당장의 정전은 물론, 두 개의 국가가 가능한 길을 함께 묻고 찾아야 합니다.
또한 물어야 합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의 도미노가 시작된 지금,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이자 정전 중인 한반도의 안전은 어떻습니까?
전환기, 새로운 질서로 나아가고 있는 세계에서 ‘힘에 의한 평화’와 한미일 동맹은 전쟁을 회피하는 길이 아니라 전쟁으로 가는 길, 전쟁동맹입니다.
전쟁의 악순환을 끝낼, 평화를 위한 지혜를 구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