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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선인출판사) 글/ 사진 : 민족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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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자체 월간지인 <민족21>에 연재한 내용을 뼈대로 이 책을 엮어낸 [민족21]은 "북녘 사회 보통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나보십시오."로 시작하는 책의 머리말에서 북녘의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자고 권한다. 가장 완벽한 ‘북녘 인민 생활사’는 직접 만나 눈으로, 가슴으로 느끼는 것 아닐까. 그 날을 기대하며 기획 연재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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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에서는 소학교 과정이 4년이기 때문에 남쪽보다 일찍 중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북녘 아이들이 11세부터 16세까지 보내게 되는 중학교 생활은 어떨까? 북녘의 한 중학생이 소개하는 중학교 생활을 들여다 보자.
안녕, 나는 평양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정현희라고 해. 올해 5학년이 됐고 나이는 열 다섯 살이야. 북쪽에서는 소학교가 4년이니까 남쪽으로 치면 중학교 3학년인가? 아무튼 반가워. 지금부터 나의 중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해줄게. 좀 두서 없을 지도 모르지만 참고 들어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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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도마다 수재학교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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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제1중학교 학생들이 과학실에서 실습을 하고 있다. | 이 영재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소학교 졸업생이나 현재 일반 중학교 재학생들로 특히 과학, 수학 성적이 뛰어나야 해. 출신학교장의 추천을 받아야만 입학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시험도 굉장히 어려워서 웬만한 실력으로는 몇 문제 풀지도 못한다고 해. 이 학교들은 아무래도 수재 양성이 목적이기 때문에 교육 내용과 교육 시설이 일반 중학교와는 대비 못할 정도로 월등하대. 학교 건물과 교육기자재를 비롯해 실험실습실, 기숙사, 수영장, 강당, 체육관 등도 다 최신식이고 교내에 이발소도 있대. 교육과정도 아주 철저하대. 교과서도 별도 제작한 것을 쓰고 한 학급 학생 수도 25명 정도로 일반 중학교보다 훨씬 적어. 수업은 과학과 외국어에 중점을 두고 있고 1, 2학년 동안 개개인의 지적능력을 평가해 3학년부터는 학생들 능력에 맞게 개별지도가 이루어진대. 선생님들도 사범대학 출신이 아니라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대 등에서 기초과학과 어학을 전공한 우수인력을 따로 선발한다고 해. 또 일반 중학교에서는 성적이 낙제라도 진급할 수 있지만 제1중학교에서는 1학기와 2학기 두 번 낙제 점수를 받으면 바로 퇴학이야. 그러면 일반 중학교로 가게 되는 거지. 뭐 그래도 원래 실력이 좋은 아이들이기 때문에 일반 중학교에 오면 1등에서 5등까지는 다 이 동무들 차지야. 심지어 일반 중학교에서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의 30%는 제1중학교에서 낙제 점수를 받고 온 학생들일 정도라니까. 우리 학급에서 1등하는 학생도 2학년 때 평양제1중학교에서 온 동무야. 이 제1중학교 학생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농촌지원 활동도 면제되고 졸업할 때는 특혜도 있어. 보통 우리 같은 일반 중학교 졸업생이 대학에 들어가려면 예비시험과 본시험에 모두 응시해서 합격해야 하거든. 그런데 제1중학교 졸업생들은 예비시험을 치지 않고 본시험에 응시할 수 있어. 그래서 졸업하면 희망에 따라 대부분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책공대 같은 최고 일류 대학들에 진학하게 된다고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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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화된 농촌지원 활동과 조직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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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마친 여중생들이 주체탑 옆 광장을 걸어가고 있다. | 아까 영재학교 학생들은 농촌지원을 면제받는다고 내가 말했지? 일반 중학교에서는 매년 농번기에 농촌지원 활동을 나가. 1~4학년은 연간 4주, 5~6학년은 8주 동안 의무적으로 농촌지원이나 건설현장지원을 해야 되는 거야. 봄에는 모내기, 여름에는 김매기 등을 하고 가을에는 강냉이, 벼, 콩, 수수 등의 가을걷이를 돕지. 북쪽 농사는 학생들이 다 짓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온갖 농사일을 다 하는 거야. 특히 7월 한달 동안 펼쳐지는 `김매기 전투`는 수업이 끝난 오후에 하지만 모내기를 하는 `봄전투`와 가을걷이하는 `가을전투`는 5월 초와 9월 말에 시작돼 20~30일씩 계속해. 농촌 학교들은 모내기와 가을걷이도 수업을 마치고 오후에 나가기도 하지만 우리처럼 도시에 있는 학교들은 농촌 현장이 멀기 때문에 수업을 아예 중단하고 그 기간 동안 농촌에 살면서 일해. 나도 지난해 형제산 구역에 있는 협동농장으로 가을걷이를 나갔어. 오랫동안 농촌에 가서 일해야 하는 거라 갈아입을 내의며 작업복, 덮고 잘 모포에 각자 쓸 필수품까지 배낭 가득 짐을 챙겨 넣고 말이야. 농촌에 머무는 동안에 남학생들은 대개 협동농장 선전교양실을 공동숙소로 사용하고 여학생들은 각 개인 집에 대여섯 명씩 나뉘어서 생활하지. 작업은 아침 8시부터 시작해서 하루 종일 이루어지는데 매일 일만 하려니까 얼마나 힘들던지. 역시 공부가 제일 쉽구나 하는 생각을 다 하게 된다니까. 이렇게 장기간 농촌지원에서 돌아오면 다시 공부에 적응하는 것도 일이야. 우리도 가을걷이를 다녀온 다음에 한 열흘 정도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수업시간에 다 졸았어. 게다가 가뜩이나 외우기 어려웠던 수학공식, 영어단어들은 완전히 처음 보는 것처럼 왜 그렇게 낯선지. 그래도 졸업한 선배들의 말에 의하면 나중에 이런 경험들이 많이 남는대. 막상 닥칠 때는 고달프지만 지내놓고 보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되었음을 알게 될 거라고 하더군. 또 이런 경험 때문에 중학교 시절이 더 아름답게 기억된다고. 지난해는 처음으로 몇 달 간 가을걷이도 나갔고 또 김일성주의청년동맹(청년동맹)에 가입했던 의미 깊은 해였어. 중학교 4학년이 되면 소학교부터 해온 소년단 생활을 끝내고 청년동맹에 가맹하게 돼. 가맹 대상은 만 14세부터 30세까지 청년으로 강령과 규약을 승인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투쟁하는 자라고 되어 있어. 청년동맹 역시 소년단처럼 몇 단계로 나눠서 차례차례 가맹하게 되는데 먼저 소년단에서 추천사업을 거쳐야 해. 다음은 학급과 학교 위원회와 구역 위원회를 거치면서 심사가 이루어지지. 이때 청년동맹 규약과 기타 정치학습 과제에 통달해야 해. 청년동맹에 가맹하려는 모든 학생들은 개별적으로 면담하면서 규약이나 김일성 주석 혁명 역사의 주요 연대표를 묻는 질문에 답해야 하고 때로는 "왜 청년동맹에 가맹하려고 하는가", "가맹하면서 어떤 각오를 갖고 있는가" 등과 같은 질문을 받기도 하지. 이런 과정을 모두 통과하면 선서를 하고 본인의 사진이 붙어 있는 맹원증을 받게 되지. 맹원증을 받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해. 7년간 매고 다니던 소년단 붉은 넥타이를 풀고 왼쪽 가슴에 청년동맹 휘장을 달고 나니 `나도 이제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기분이 들면서 가슴이 뿌듯해졌었어. 청년동맹에 가입하고 나면 소년단 생활을 접는 것 외에도 또 달라지는 것이 있어. 바로 `붉은청년근위대`에 들어가게 되는 거야. 청년동맹 가입과 동시에 우리는 남자건 여자건 군사동원부 명부에 등록돼. 그리고 구역병원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은 다음 학교에서 붉은청년근위대 입대식을 진행하고 붉은청년근위대원으로 소속되는 거야. 입대식에는 시당 적위대부에서 간부가 나와 이렇게 연설을 하지. "이제부터 여러 동무들은 조국을 지키는 병사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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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240시간 군사교육훈련과 천리행군 |
붉은청년근위대 조직은 로동당 군사부의 지휘통제 아래 중대로 편성되어 있어. 훈련 동원 때에는 당의 외곽단체인 청년동맹과 정무원 교육위원회 예하로 편입되지. 이렇게 붉은청년근위대에 소속되게 되면 군사훈련을 받게 되는데 훈련은 학교 내 교육과 근위대 야영훈련소 훈련으로 구분돼. 학내에서 교육훈련을 할 때는 학교별로 제대군관 또는 현역군관이 와서 주당 6시간, 연간 약 240시간 교육훈련을 실시하지. 그리고 야외전술훈련은 연간 15일 동안 의무적으로 각 시, 군, 소재지 근위대 야영훈련소에 입소해 소좌급 교관에 의해 집체훈련을 받게 되어 있어. 지난해부터 붉은청년근위대 소속으로 군사훈련을 받았는데 거의 현역병 수준의 힘든 훈련이었어. 또 매월 한 차례씩 오전 2시부터 6시간 동안 비상소집 훈련에 참가해 비상연락망, 식량 등 비상대비 물자 등을 검열 받고 1시간 30분 동안 산악행군을 해야 했어. 5학년이 된 올해는 아마 훈련강도가 더 높아질 거야. 매주 3차례에 걸쳐 총 3시간 동안 철조망 통과, 담장 넘기, 밧줄 타고 오르기 같은 훈련을 받게 된다고 해. 특히 5학년은 매년 15일 동안 붉은청년근위대 훈련소에 입소해 사격, 분열 및 군대기본 전술 등을 배우고 훈련 마지막 날에는 AK 소총 3발을 쏘는 실탄 사격기술 측정을 거치도록 되어 있거든. 올 여름에는 나도 여기에 참가하게 될 거야. 벌써부터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해. 선배들 말을 들어보면 새벽 5시 반에 기상해서 밤 10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훈련이 진행된다던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한여름 뙤약볕에 뛰어다니다 보니 너무 지쳐서 조준 연습을 하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는 선배도 있던데 내가 그렇게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야. 하지만 나는 백두산 천지까지 천리를 걸어서 가는 `배움의 천리길 백두산 행군`도 무사히 마쳤는 걸. "조선을 알아야 한다"는 아버지 말씀에 따라 김일성 수령이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중국 팔도구를 떠나 평양까지 단신으로 걸어서 나온 길이라 해서 붙여진 `배움의 천리길`과 2년 뒤 일제 경찰에게 아버지가 잡혔다는 연락이 와서 나라 찾기 전에는 조국 땅에 다시 오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떠난 길이라 해서 붙여진 `광복의 천리길`은 북쪽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참가해 보고 싶어하는 행군이야. 마치 1930년대 항일유격대원처럼 군복 차림에 배낭에는 `강인성`, `혁명성`, `혁명적 동지애`와 같은 구호를 달고 `혁명가요`를 부르면서 하루 150리를 걷고 야영한 다음 또다시 150리를 걷는 식으로 천리길을 걸어가지. 대학생들은 평양에서부터 걸어서 개천, 회천, 강계, 후창을 거쳐 백두산까지 전체 노정을 답사한다고 해. 하지만 우리는 중학생이기 때문에 혜산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그곳부터 행군으로 건창, 베개봉, 곤장덕, 청봉, 삼지연 등 숙영지를 거쳐 백두산 천지에 이르렀어. 나중에는 온통 발이 부르트고 물집이 생기고 다리가 아파 절룩거리면서 걸었던 엄청난 강행군이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냈단 말야. 그러니까 올해도 나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선배들 말처럼 아무리 힘든 일도 지나고 나면 값진 추억으로 웃으며 얘기할 수 있을 거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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