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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우리민족이야기』와 민족주의자 김남식 이야기
지은이 : 김남식 출판사 : 통일뉴스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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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생전 김남식 선생의 모습 | 김남식 선생. 그는 북한연구전문가, 또는 현대사연구자로 알려져 있지만, 선생 스스로는 남이건 북이건 분리시켜 사고하거나 연구해서는 어느 하나도 제대로 볼 수 없음을 늘 강조하셨다. 선생의 연구에는 풍부한 지식과 깊은 통찰, 분단 및 민족 문제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분석뿐만 아니라 개인사의 애환과 고뇌, 극복의 과정이 깔려 있다고 종종 느낀다. 선생 자신이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위해 한 평생을 받쳤던 것은 개인적 능력이나 자질, 관심만의 결과는 아닌 것으로 사료된다. 선생께서는 생전에 간혹, 너무도 간혹 깊은 한숨과 함께 빨치산으로 바쳐진 동지들과 동생들에 대한 깊은 아픔을 나직이 토로하시곤 하셨다. 선생에게 있어서 제2전선으로서의 빨치산이 이태의 『남부군』의 인식처럼 남에 의해서도 북에 의해서도 버려진 존재라는 인식은 역사적으로도 비사실적일 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정의였다. 그리고 아마도 살아서는 다시는 못 만날 사람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도 갖고 계셨으리라 짐작한다. 민족주의자 김남식은 분단 조국에 대한 철저한 과학적 탐색과 인식, 연구와 함께 개인사의 지나한 고통과 슬픔을 승화시켜 통일을 연구하고 새로운 통일의 길을 열어나갔다. 나로서는 재수가 좋아, 20대 후반 석사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선생의 가르침을 받을 기회를 얻었다. 그 후로부터 많은 가르침에 의해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데 선생의 역할은 지대한 것이었다. 하나의 일화를 소개하면, 선생의 집필 현장에 여러 번 있은 적이 있다. 선생의 집필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나는 내 눈과 귀를 의심할 정도로 그것은 흥미롭고 신비로운 작업이었다. 수전증으로 인해 오른팔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선생은 대부분의 글들을 구술로 진행하셨다. 선생에게 있어서 자료와 기억이 둘이 아니듯, 말과 글이 둘이 아니었다. 선생이 수많은 자료를 기억하고 적절히 인용하는 것은 비상한 기억력과 함께 철저한 사고훈련의 결과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구술사가(oral historian)인 나로서는 구술된 언어가 거의 곧바로 문자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이 말한 것이 글로 나온 것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놀라움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성실한 노력으로 극복해온 거인의 모습 앞에 나는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20대의 내가 60대의 선생을 만나는 과정에서 느낀 인상은 강인한 철인의 모습에 간혹 비쳐지는 서정을 담은 따뜻한 모습이 모순적으로 섞여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훌쩍 40대가 다된 내 앞에서 선생은 아픔에 공명하며 우신 적이 있다. 선생을 울린 것은 바로 한 편의 시였다.
이름 없는 아기 혼들 - 석달동 양민 학살 때 죽은 아기들을 생각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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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류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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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어 넓은 세상 머물 곳 찾아 구천 떠도는 어매 아배 기다리며 석달 마을 산 모퉁이에 이름 없는 아기 혼들 울고 있네
아가들아 아가들아 이름 없는 아가들아 울지를 말고 피묻은 아배 조바위 쓰고 눈물 젖은 어매 고무신 신고 놀지
아가들아 아가들아 오늘 밤은 어매 품에 안겨 아배 등에 업혀 백토로 사라지기 전 그 옛날처럼 좋은 세상 꿈꾸며 잠들어라 (02.12. 28 『민중의 소리』 발표) | 2003년 1월초였던 것 같은데, 당시 선생은 류춘도라는 시인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었다. 류춘도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한 채, 그저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본 시를 기억하셨다가 내게 들려주시겠다며 낭송하시던 중 그만 눈물을 주루룩 흘리셨다. 선생에게는 시가 시가 아니요, 역사가 역사가 아니었다. 그에 눈앞에 떠오르는 처연한 민족수난의 모습은 한 평생 그를 민족주의자로서의 길로 가게 했던 것이리라.
2004년, 선생은 팔순을 맞아 『21세기 우리민족이야기』를 발표하셨다. 이 책은 선생이 분단 조국과 우리 민족에게 받친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 그것은 김남식 선생이 특히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이후 각 인터넷과 언론지면 그리고 강연을 통해 발표한 원고들을 묶었는데, 모두 3부로 되어 있다.
1부는 ‘21세기 김정일 시대의 북한’으로서 북한의 민족론, 사회주의론, 강성대국론, 통일론 등 논문들로 되어 있다. 2부는 ‘우리민족과의 대화’로서 김남식 선생이 한 강의, 대담, 강연, 대화 등을 생생하게 엮었다. 3부는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한 칼럼과 기고 그리고 강연원고 등을 정리했다.
대개 많은 제도권 내의 학자들은 쉰을 넘기고 예순이 되고 나면 대개 연구 활동에 게으르거나 새로운 인식에 접하기를 두려워하는 모습들을 보곤 한다. 하지만 김남식 선생에게는 나이가 없었다. 쉰이 되어 『남로당 연구 자료집』(1974)을 내놓은 이래로 남북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수많은 금과옥조가 되어온 자료집, 논문집, 시사집, 강연물을 발표해왔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천리길을 멀다않고 달려가셨다. 선생의 긴 연구 인생에서 당신은 외롭지만 수많은 영혼들을 달래며 과거를 현재와 미래로 연결하고자 하였다. 그 연결 지점에 선생은 ‘민족주의’라는 기둥을 세웠다. 그의 ‘사상과 이념, 제도를 초월하지 않고서는 우리민족이 하나 될 수 없다’는 화두는, 그는 떠났지만 더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분단시대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주신 것에 대한 사무치는 고마움을 보내며, 삼가 님의 명복을 빕니다. |
제자 김귀옥. | |
김귀옥 교수 소개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1987), 동대학 대학원 석,박사(1991, 1999).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와 여성연구소의 전임연구원. 한국정신문화연구원과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초빙연구원 등을 거쳐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객원교수, 성공회대학교 사회문화연구원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한성대학교 교양과 교수(사회학)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관심사는 분단과 전쟁, 통일과 평화, 이산가족과 여성, 분단을 넘는 사람들, 다이아스포라(diaspora) 공동체에 걸쳐있으며, 관련 연구를 위해 현지조사(fieldwork research)와 구술사 방법론을 통해 기억 속에 묻혀있는 자료를 발굴, 정리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이산가족, ‘반공전사’도, ‘빨갱이’도 아닌...: 이산가족 문제를 보는 새로운 시각』(역사비평사, 2004), 『월남민의 생활경험과 정체성-밑으로부터 월남민 연구』(서울대 출판부, 2002), 『북한여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당대, 2000), 『남북한의 실질적 통합을 위한 여성정책 강화방안』(공저, 통일연구원, 2002), 『한국사회사 연구』(공저, 나남, 2003) 등이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