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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선인출판사) 글/ 사진 : 민족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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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자체 월간지인 <민족21>에 연재한 내용을 뼈대로 이 책을 엮어낸 [민족21]은 "북녘 사회 보통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나보십시오."로 시작하는 책의 머리말에서 북녘의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자고 권한다. 가장 완벽한 ‘북녘 인민 생활사’는 직접 만나 눈으로, 가슴으로 느끼는 것 아닐까. 그 날을 기대하며 기획 연재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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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군인들이 전쟁노병의 경험담을 듣고 있다. | 북의 군대는 과거 원칙적으로 군입대를 자원하는 초모병제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학 진학이나 신체검사 불합격자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중학교 졸업 후 군대에 들어가 5~10년씩 군대생활을 했다. 특히 2003년부터는 `전인복무제`를 채택해 징병제로 바뀌었다. 북의 남성들 대부분이 경험하는 군대생활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자.
이제 22일 남았다. 22일 후면 제대다. 두달 전 제대 통보를 받고 난 후로는 하루가 어쩌면 그렇게도 길던지... 꼭 하루가 일년 같았다. 그러고 보면 시간은 참 빠르다. 중학교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들어온지 벌써 10년이 지나 제대를 얼마 앞두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제 제대를 하고 나면 사회에 나가 직장도 잡고 사회생활에 뛰어들게 될 텐데 `잘 할 수 있을까` 고민도 된다. 중학교 졸업하고 군대에 들어올 때는 별 고민이 없었는데. 사실 나는 대학 진학할 생각이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신체검사를 받고 군대에 들어왔다. 사실 북의 남자들은 누구나 `조국 보위의 초소`에 서려 한다. 군대를 기피하면 사회적으로 잘 인정해주지 않을뿐더러 군대에 다녀오는 것이 이후 입당이나 직장 배치, 대학진학에도 전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 중학교를 졸업한 남학생의 70% 이상이 군대에 간다. 여학생들 중에도 10% 정도는 군대를 선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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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돌격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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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시내의 공터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북의 군인들. | 지난 1994년 7월부터 2000년 10월까지 북의 `고난의 행군·사회주의 강행군` 시기에 건설된 시설물에는 `청년`이란 명칭이 유독 많이 붙어있다. 안변청년발전소(금강산발전소), 금강산청년철길(철도), 12월5일청년광산, 북천2호청년발전소, 청년영웅도로(평양-남포고속도로) 등이 대표적이다. 이 어렵던 시기에 새로 건설되거나 개건된 각종 시설물은 모두 4만여 개. 왜 북은 대규모 시설물에 `청년`이란 이름을 달았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청년들로 구성된 `돌격대`들이 경제의 어렵고 힘든 부문에서 선봉적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청년들로 조직된 돌격대만도 12만 개가 넘는다. 청년돌격대들은 2001년 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국가경제력 강화를 위한 `새로운 사고`를 제창한 이래 큰 규모의 건설사업장은 물론 과학기술분야 및 정보산업분야에도 대거 참여하는 등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들 돌격대들은 최근 전력, 석탄, 금속, 철도, 농업 등 전 경제분야에 진출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경제강국 건설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청년돌격대는 1946년 5월 시작된 평양 `보통강 개수공사` 때 처음 등장했다. 보통강 개수공사는 큰 비가 오면 범람해 많은 인명피해를 내 `재난의 강`으로 불리던 보통강을 정비하는 대형공사였다. 보통강 개수공사에서 청년돌격대의 힘이 발휘되자 북은 필요할 때마다 청년돌격대를 조직, 각종 공사현장에 투입했다. 청년돌격대는 임무의 성격에 따라 명칭이 바뀌기도 했다. 전쟁 후 복구 사업에 투입된 돌격대는 `청년건설돌격대`, `청년복구대` 등으로, 60년대 후반 기술지원 임무가 부여되면서부터는 `기술혁신청년돌격대`로 불렸다. 청년돌격대는 30여 년간 대형공사 기간에 맞춰 임시조직으로 운용되다 1975년 5월 `속도전 청년돌격대`가 조직되면서부터 상설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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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현장에서도 군인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사진은 개성공단 착공식 때 안내하는 북측 군인 | 속도전 청년돌격대는 도로나 공장·기업소 등 산업시설과 아파트 등을 건설하는 `김일성주의청년동맹`(청년동맹) 산하 조직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74년 3월 청년동맹(당시 사로청) 전원회의에서 청년들이 속도전 운동에 앞장설 것을 강조함에 따라 이듬해 조직됐다. 속도전 청년돌격대는 청년동맹의 통제아래 군대 조직처럼 중앙급 14개 여단과 지방급 11개 여단 등 모두 25개 여단을 두고 있으며 여단 예하에는 대대, 중대, 소대가 편성돼 있다. 대원들의 직급도 전사에서 대좌까지 군인 계급과 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속도전 청년돌격대원들은 입대 후에는 병영과 비슷한 곳에서 단체생활을 하다가 주로 겨울철에 15일간의 휴가를 받게 되며 2~3년간의 대원생활을 끝낸 뒤 직장에 배치된다. 남쪽에서는 건설회사들이 주요 시설을 건설하는 것과 달리 북은 청년들이 국가 주요 시설 공사의 상당부분을 맡고 있는 셈이다. 속도전 청년돌격대는 창설 이후 지금까지 20여 년간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 삼지연(백두산) 혁명전적지, 평양시 강동지구-은정구역 주택신축 등 160여 개의 주요 시설·건축물을 건설했다. 특히 맨손으로 건설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청년영웅도로` 건설과정에서 청년들은 숱한 가슴저린 사연을 남기기도 했다. 전국의 2백여 개 시·군에서 이 공사에 참여한 10만 여명의 각 지역의 청년돌격대들은 군인들과 함께 해머와 정, 들것, 마대 등의 장비만으로 40여km의 고속도로를 1년 11개월만에 완성했다. 밤낮으로 계속된 공사기간에 청년돌격대원들에게 가장 힘들었던 것이 뭐냐고 물으면 누구나 "춥고 힘든 것은 다 참아낼 수 있었으나 졸음만은 정말이지 견디여 내기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로동신문>이 소개한 사례를 보면 노반에 깔 잔자갈을 깨다 돌을 내려치는 망치가 자기 손가락을 내리쳐 피가 나는 것도 모르고 졸았던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흙마대를 메고 너무 졸려 쉰다섯, 쉰여섯 하고 숫자를 세며 걸으면서 자는 사람도 있었다. `잠이 없는 처녀`라는 별명이 붙은 평양시 청년건설사단 중화군연대의 선동원 이명애 씨의 사연은 더욱 눈물겹다. 이 씨는 어느 추운 겨울밤 야간작업장에서 모두 콩국으로 짧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동안 혼자 언덕에 올라 찬바람을 맞고 있었다. 이 씨의 행동을 의아하게 여긴 기자가 그 이유를 묻자 이 씨는 "앉으면 졸까봐 그래요. 이제 잠들면 난 못 일어나요"라고 대답했다. 밤낮으로 이어진 공사가 얼마나 고됐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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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관리사업에서도 인민군대가 앞장에 서자`라는 문구가 보인다. | 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건설기념메달`을 제정해 `청년영웅도로` 건설에 참여했던 청년들과 군인들에게 수여했다. 모범을 보인 35명의 건설자들에게는 최고의 영예칭호인 `노력영웅` 칭호가 수여됐다. 최근 청년돌격대는 활동분야를 넓혀 `경제 강국` 건설의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2001년 4월 착공된 평양시 3만가구 주택 건설이나 마무리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개천-태성호 물길공사, 황해남도 토지정리 현장에도 각지 청년돌격대에 소속된 많은 청년들이 참여해 완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 언론들은 만경대, 서포, 룡성 등 평양시내 닭공장 현대화 공사와 염소목장, 양어장 건설에도 청년돌격대가 투입되어 두드러진 활약을 하고 있는 것으로 소개했다. 청년들은 북이 주력하고 있는 전력과 식량문제 해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식량증산을 위해 2000년 한해에만 전국적으로 수만 명을 망라하는 1천여 개의 청년분조(分組)와 청년작업반이 조직됐다. 또 전력문제를 풀기위해 대규모 수력발전소 건설 뿐만 아니라 중소규모 발전소 건설에도 헌신했다. 청년돌격대는 2000년부터 각 시·군에 1개 이상의 중소형발전소를 건설하는 사업을 추진해 전국적으로 1천여 개의 중소형발전소가 가동되도록 했다. 그 결과 수백 개의 마을들이 자체로 전력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됐다. 청년동맹 소속 돌격대 외에 조선로동당 소속 건설 전담기관인 `당원돌격대`(1980년 창립) 역시 청년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특히 당원돌격대는 `노동당시대의 기념비적 건축물`로 평가되는 대규모 건설공사에 참가해 영웅·공로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돌격대로 각광을 받고 있다. 금수산기념궁전, 3대혁명기념탑, 조국통일 3대헌장기념탑 등 북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이들의 손에 의해 건설됐다. 청년들이 각 경제부문별로 참여해 주로 어렵고 힘든 분야에서 돌파구를 여는 `돌격대` 활동을 전개하면서 경제강국 건설의 선봉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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