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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선인출판사) 글/ 사진 : 민족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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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자체 월간지인 <민족21>에 연재한 내용을 뼈대로 이 책을 엮어낸 [민족21]은 "북녘 사회 보통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나보십시오."로 시작하는 책의 머리말에서 북녘의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자고 권한다. 가장 완벽한 ‘북녘 인민 생활사’는 직접 만나 눈으로, 가슴으로 느끼는 것 아닐까. 그 날을 기대하며 기획 연재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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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남편과 부인이 다 직장에 나간다. 이런 맞벌이 부부를 북에서는 직장세대라고 부른다. 사회와 집단에서 차지하는 여성의 역할이 남성과 거의 동등한 남녀평등사회다. 그런데 남쪽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가정에서는 남성의 권위를 내세우기도 한다는데... 북녘의 한 직장세대의 하루를 상상해봤다.
사진 ▶ 평양의 아침. 아이는 학교로 엄마는 직장으로 사이좋게 길을 나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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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동쪽 하늘이 뿌옇게 밝아오기 시작한다. 새벽 5시 30분. 벌써 십여 년 째 어김없이 일어나던 시간인데 오늘은 유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기가 싫은 건 왜일까. 어서 일어나서 아침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데. 계속 내일, 내일 하고 미뤄온 아파트 복도 청소도 오늘은 꼭 해야 할 텐데. 왜 이렇게 몸이 무겁기만 한지. 세상 모르고 코를 골며 곤하게 자고 있을 세대주(남편)를 생각하자 더욱 일어나기가 싫어지는 걸 보니 오늘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생각은 분명 어제 세대주의 괘씸한 행동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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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세대의 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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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의학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북녘 여성과학자들. 북에서도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활발하다. | 어제는 직장에서 생활총화가 있는 날이었다. 보통은 오후 5시 반이면 퇴근하지만 일주일에 한번 있는 생활총화날 만큼은 어쩔 수 없이 퇴근이 늦어지기 때문에 아침부터 세대주에게 단단히 주의를 두었다. 오늘은 꼭 일찍 들어와서 아이들 숙제도 봐주고 혹 가능하면 아이들과 함께 저녁준비도 좀 해달라고. 아침에만 해도 세대주는 선선히 "그러마"라고 했다. 사실 세대주가 요리를 못하는 것도 아니다. 아니 세대주는 요리사 자격증까지 가지고 있다. 그러니 똑같이 하루 8시간 노동하는 직장세대(맞벌이 부부)니 만큼 가끔씩은 세대주가 요리도 해주고 가정 일도 도와주고 하면 좋겠건만 세대주는 부엌에도 잘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 세간을 다루는 것은 여자들의 몫이라는 생각이 너무도 철저한 사람이다. 처녀총각시절 같은 직장에 있을 때 만나 연애를 할 때는 그런 사람인 줄 전혀 몰랐다. 3살 위인 세대주는 당시 남들보다 항상 더 열심히 성실하게 일 잘하는 사람이었고 다른 직장 동무들하고의 관계도 참 좋았다. 사람 좋아하고 동무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은 그를 은근히 동경하던 마음이 공원이며 극장을 함께 다니다가 결혼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결혼 전만 해도 세대주는 요리도 청소도 다 거들어줄 것처럼, 대신 해주기라도 할 것처럼 이야기했다. 하지만 웬걸.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나자 서서히 세대주는 남성이 할 일, 여성이 할 일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가루탄을 받아다 구멍탄을 찍는 일이라든가 물을 길어다주는 일, 무거운 쌀자루를 날라다주거나 김장을 할 때 배추를 타다주고 하는 등 무겁거나 힘든 일을 할 때면 으레 남성이 하는 일인 줄 알고 곧잘 거들어 주지만 청소며 설거지와 같은 일에는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으려 들기 일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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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부녀절은 남편이 요리하는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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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8일 국제부녀절(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중앙보고회가 개최되었다. | 남녀평등권법령이 생긴 지도 벌써 57년. 사회적으로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거나 더 많은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추어졌다. 여성은 현재 남성과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사회의 모든 직책에 들어가 있다. 1945년 11월 18일 창립된 조선민주녀성동맹은 조선로동당 다음에 무어진(결성된) 첫 사회단체이고 이듬해 7월 30일에는 여성과 남성이 똑같은 권리를 행사하도록 한 남녀평등권법령도 발표됐다. 요즘에는 남녀평등권법령이 발표된 7월 30일을 기려 부인에게 선물을 하는 남편들도 많아졌다. 여성이 사회에서 남성과 동등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1994년 말 현재 전체 산업체 노동인력의 53.8%가 여성이라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더라도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도록 산전산후 휴가제라든가 보육설비가 잘 갖춰져 있다. 나 역시 큰아들 진혁이를 낳아서 처음 아이를 일주일씩 주탁아소에 맡길 때는 마음이 무거웠지만 탁아소에서 아이를 잘 돌봐주는 데다가 아이가 동무도 사귀고 익숙해지는 걸 보면서 다시 직장생활에 매진할 수 있었다. 가정부인으로서 역할도 역할이지만 사회에서 자기 맡은 과업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기본이고 사회와 집단에 얼마나 이바지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속에서 안해를 대신해 요리하는 일에 익숙해진 남편들도 늘고, 함께 부엌에 들어가 안해의 일손을 돕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우리 세대주는 여전히 21세기가 아니라 봉건시대에 사는 사람 같다. 물론 세대주가 여성이라고 나를 무시한다거나 남성과 여성이 차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남성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든가 가정 일은 여성의 일이라든가 하는 생각만큼은 쉽게 바뀌지가 않는 모양이다. 최근 3월 8일 국제부녀절(세계여성의 날)이면 남편이 부인을 위해 요리를 장만하는 것이 새로운 풍조로 생겨났다. 세대주도 다들 그러는 날이니 만큼 그날 만큼은 자기가 요리를 하겠다며 부엌에 들어가곤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음식을 식탁에 내놓는 것은 아니다. 올해에도 부엌에 들어가 3시간이나 아이들과 나를 기다리게 하더니 겨우 들고 나온 것이 계란볶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