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 전쟁, 세계 질서 변화 결정.... ‘남의 힘에 의한 평화’, 한국 안보 위협”
[겨레하나 평화포럼 지상 중계 ⑤]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한반도
장창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1년 9개월이 경과하고 있다. 전선은 교착되었으나 교전은 멈추지 않고 있다. 휴전에 대한 논의도 전개되고 있으나 전망은 불투명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 군사 작전’을 전개한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다. 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를 공격했을까. 러시아는 ‘특별 군사 작전’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러-우 전쟁’은 한반도 정세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가 대러 제재에 착수하자, 러시아는 우리를 비우호국으로 지정했다.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제공하자 ‘적대국’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발신한 지 오래다. 지난 9월 개최된 북-러 정상회담은 또 하나의 정세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소장 변학문)는 지난 11월 27일 러시아 전문가인 제성훈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초청하여 제5차 평화포럼을 진행했다. 이번 평화포럼은 한신대학교 통일평화정책연구센터(소장 장창준)와 공동 개최했다. 아래 제성훈 교수의 발표문을 요약한다.
러시아 ‘특별 군사 작전’의 목적
러시아는 UN 안보리의 결의 또는 해당 국가의 동의 없이 다른 국가를 주권을 침해하고 영토적 통합성을 위협하는 군사적 개입에 반대해 왔다. 2021년 12월 중순 미국과 나토(NATO)에 적대 관계 청산, 나토의 추가 확장 포기, 신규 회원국 영토에 병력 및 무기 배치를 금지하는 등의 요구 사항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요구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러시아는 2022년 2월 21일 도네츠크 공화국과 루간스크 공화국의 주권을 인정하고, 2월 25일 새벽 이들 국가와 체결한 조약에 따라 이른바 ‘특별 군사 작전’을 개시했다. ‘특별 군사 작전’의 목적은 “8년간 진행된 우크라이나 정권의 모욕과 집단학살에 노출된 사람들의 보호”, “우크라이나의 비군사와 비나치화”였다.
이는 다음과 같은 푸틴의 확신 때문이었다. 첫째, 미국과 나토와의 협상에서 진전은 가능하지 않다. 즉 우크라이나로의 나토 추가 확대는 기정사실이다. 둘째,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도네츠크 공화국과 루간스크 공화국 등)을 탈환하기 위한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공세는 계속될 것이다. 셋째, 시간이 흐를수록 우크라이나의 군사력과 민족주의적 경향 역시 강화될 것이다.
세계질서의 변화를 결정할 미국과 러시아의 패권전쟁: 세계적 차원
세계적 차원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질서의 변화를 결정하는 미국과 러시아의 패권전쟁이다. 미국은 단극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탈소비에트 지역에서 패권 국가의 출현을 저지하려 한다. 미국은 얄타회담에서 소련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하여 냉전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얄타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러시아에 어떠한 양보도 해서는 안 된다는 ‘얄타 트라우마’가 탈냉전기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비타협적 정책으로 현실화하였다. 그 결과 미국은 러시아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로까지 나토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러시아는 다극 체제 형성을 위해 탈소비에트 지역에서 패권 국가가 되려고 한다. 러시아는 냉전 종식을 선언했던 몰타회담 이후 진행된 탈냉전의 결과가 결코 자신에게 공정하지 못했다는 ‘몰타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미국이 ‘강요하는’ 세계질서에 순응해서는 안 된다는 ‘몰타 트라우마’는 2000년대 미·러 갈등을 거쳐 신수정주의 정책으로 발전하여, 탈소비에트 지역을 통합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화했다.
특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탈소비에트 지역 통합의 대상으로 여겨왔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문명적 차원에서 키예프는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공동의 민족적 근원지이며, 크림반도는 종교적 근원지이다. 둘째, 경제적 차원에서 우크라이나는 구(舊)소련 국가 중 두 번째로 인구가 많고, 세 번째로 경제 규모가 큰 국가이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천연자원, 흑토지대, 흑해 연안의 항구, 러시아와 통합된 산업·교통·에너지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셋째, 안보적 차원에서 우크라이나가 통합에서 제외되면 러시아와 나토 간 완충지대가 상실되는 안좋은 결과가 발생하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위협하는 미국과 나토의 교두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안보 딜레마의 심화에 따른 인접국 간 전쟁: 지역적 차원
지역적 차원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안보 딜레마의 심화로 인한 인접국 간 전쟁이다. 안보 딜레마는 한 국가가 자신의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취하는 행동은 다른 국가의 대응을 유발하여, 결과적으로 해당 국가의 안보가 증가하기보다 오히려 감소하게 되는 상황을 뜻한다. 러시아는 2010년부터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였다. 안보 강화를 위한 노력을 나토와의 관계가 강화되는 것이었다.
2010년 11월 우크라이나는 나토의 MD 능력 개발을 확보하기로 했고, 2016년 나토의 MD 기본 운영 능력 확보를 선언했다. 2019년은 이런 노력을 본격화하여, 그해 2월 우크라이나 의회는 포로센코 당시 대통령이 제출한 우크라이나의 EU 및 나토 가입 노선이 명시된 헌법 개정안을 승인했다.
그 이후 우크라이나는 나토와 함께 정기적인 군사훈련을 시작했고, 우크라이나에 공중 및 해상 공격이 가능한 인프라(비행장 네트워크 현대화, 영공 개방, 해군작전센터 등)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2022년 2월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보장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핵무기를 보유할 권리를 가진다고 언급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군사적 수단을 통해 크림반도를 탈환하고 돈바스 내전을 해결하려 준비하고 있고, 러시아를 공격하기 위한 미국과 나토의 ‘교두보’가 되고 있다고 인식하기 시작한다. 2022년 2월 21일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군 및 특수임무부대의 활동을 외국 고문들이 지도하고 있고, 최근 수년간 훈련을 구실로 나토 국가의 부대가 우크라이나에 상시 주둔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군의 지휘·통제 체계가 이미 나토와 통합되어 있어서 나토 본부가 우크라이나 군을 직접 지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날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소련의 핵 기술과 그 운반 수단을 보유하고 있어서 서방의 기술 지원이 있다면 전술 핵무기 획득이 다른 나라보다 쉬울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이를 러시아의 전략적 위협으로 규정했다.
정체성 갈등으로 인한 내전의 국제화: 국내적 차원
국내적 차원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정체성 갈등으로 인한 내전이 국제화된 전쟁이다. 우크라이나의 동부와 서부는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다. 동부의 경우 17세기 중반~18세기 후반 무렵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어, 언어·문화·종교적 차원에서 ‘러시아화’된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아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우선시한다.
이에 반해 우크라이나 중서부는 오랜 기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 폴란드, 루마니아 등의 지배를 받으면서 동부 지역과는 다른 ‘우크라이나 정체성’을 가진 우크라이나인이 압도적으로 많아 민족주의가 강세를 보이고 나토 및 EU 가입을 선호한다.
이와 같이 ‘분열된 국가로서의 우크라이나’는 2010년대 접어들어 러시아 주도의 관세 동맹 참가, EU 국가들과의 경제통합 참여 등을 놓고 치열한 정치적 대립 양상을 보여왔다. 특히 두 차례의 러시아 방문을 통해 러시아의 경제지원을 약속받은 친러 성향을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EU와의 제휴 협정 체결을 잠정 중단하자, 2013년 11월부터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였고, 결국 2014년 2월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축출되고 친서방 과도 정부가 수립되었다.
과도 정부 수립을 쿠데타로 규정하고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동남부를 중심으로 확산하자, 이미 1990년대 초 독립을 선언했다가 합의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던 크림자치공화국은 2014년 3월 주민투표를 거쳐 러시아와 병합 조약을 체결했으며, 동부 지역의 루간스크주와 도네츠크주는 2014년 4월 독립을 선언했다.
이 과정을 통해 돈바스 내전이 발발했고, 돈바스 내전을 해결하기 위해 민스크 협정이 체결되었으나 이행되지 않았다. 2014년 9월과 2015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합의된 민스크 협정은 우크라이나의 영토적 통합성을 보장하는 대신 루간스크주와 도네츠크주에 특별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2014년 4월부터 8년간 14,000명 이상이 사망할 정도로 돈바스 내전은 지속되었고, 이 내전은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러시아가 ‘무력시위’를 벌이는 국제전의 성격을 함께 갖고 있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한반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동북아시아 대결 구도를 회피하기 위한 강대국 외교가 펼쳐지는 과정에서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2022년 6월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에서 러시아를 ‘동맹국의 안보와 유럽-대서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가장 중요하고 직접적인 위협’, 중국을 ‘우리의 이익과 안보, 가치에 도전하고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약화하려는 자’로 규정했다.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최초로 개최된 인도·태평양 파트너 4개국(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는데, 이는 유럽·대서양 지역 안보와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가 분리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2022년 11월 ‘인도·태평양 한·미·일 3국 파트너십에 대한 프놈펜 성명’에서 3국 정상은 ‘‘국제질서의 근간을 뒤흔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잔혹하고 정당화될 수 없는 침략전쟁에 대항하여 우크라이나와 함께한다는 의지를 확인’하면서, ‘인도·태평양 수역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하며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또한 2023년 8월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캠프 데이비드 정신’, ‘캠프 데이비드 원칙’, ‘한·미·일 간 협의에 대한 공약’을 채택하여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 간 전략적 공조, 한·미·일 3국 협력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한편 북·중·러 연대 역시 강화되었다.
2022년 2월 ‘신시대 국제관계와 지구적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러·중 공동성명’에서 양 정상은 “양국 간 우호는 경계가 없고, 협력에는 금지된 영역이 없다”면서 협력을 과시했다. 실제로 중국과의 이런 우호·협력 관계가 없었더라면, 러시아가 중국과 인접한 동부 군관구의 대규모 병력과 무기·장비를 우크라이나 공격에 동원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2022년 2월부터 현재까지 UN 총회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하여 6개의 결의안을 채택했는데, 북한은 러시아, 벨라루스, 시리아를 제외하면 모든 결의안에 반대한 유일한 국가이다. 2023년 1월 김여정 국무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부부장은 북한 고위급 인사 중 최초로 러시아의 이른바 ‘특별 군사 작전’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했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로씨야를 파멸시키기 위한 대리전쟁’으로 규정하고, “우리는 국가의 존엄과 명예, 나라의 자주권과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싸움에 나선 로씨야 군대와 인민과 언제나 한 전호에 서 있을 것이다”라며 러시아를 지지했다.
지난 7월 북한의 전승절 70주년 기념식에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참석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푸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고, 러시아 국방부는 이번 방문이 북·러 군사 관계 강화를 촉진하고 양국 간 협력 발전의 중요한 단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9월 개최된 북·러 정상회담은 세계 질서의 변화에 부합하는 북-러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 정권 수립과 한국전쟁에서 시작된 양국의 역사적 유대 관계를 확인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 역시 북한의 최우선 순위가 러시아와의 관계라고 언급했다.
남북 간 안보 딜레마 해소를 위한 신뢰 구축 필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안보 딜레마 심화에 따른 인접국 간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남북 사이에도 안보 딜레마 해소를 위한 신뢰 구축이 필요하다.
2022년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8발을 포함하여 역대 최다 미사일 시험발사 실시,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ICBM 능력 제고, 다탄두 개별유도 기술 제고, 핵잠수함 및 수중 발사 핵전략 무기 개발, 군정찰위성 개발 등 이른바 ‘전략무기 5대 과업’ 달성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2022년 11월 한·미·일 3국 정상회의 이후에는 미국의 ‘확장 억제력 제공 강화’ 언급에 경고한다는 명분으로 미사일 발사 빈도가 증대했다.
또한 2022년 9월 북한은 법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를 채택하면서, ‘핵무력 정책’ 법제화를 통한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공식화했다. 2023년 9월에는 “핵무기 발전을 고도화해 생존권과 발전권을 담보하고 전쟁을 억제하며 지역과 세계 평화와 안정을 수호한다.”라고 명시하면서 이른바 ‘핵무기 고도화’ 정책을 헌법에 명시했다.
한국과 미국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축소·조정·연기된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이 2022년부터 다시 시작했다.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이 2017년 8월 이후 5년 만에 ‘을지 자유의 방패’(UFS)로 명칭을 바꾸어 부활했고, 연대급 이상 한·미 연합 야외 기동훈련도 재개했다. 2022년 10~11월에는 5년 만에 한·미 군용기 240여 대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합 공중 훈련 ‘비질런트 스톰’(Vigilant Storm)이 진행됐으며, 한·미·일 3국 해상 전력은 2022년 9월 30일 동해 독도 인근 공해상에서 2017년 4월 이후 5년 만에 연합 대잠수함 훈련 시행, 2023년 4월에도 연합 대잠수함 훈련, 수색·구조훈련이 시행되었다.
2023년 4월 한미 정상은 ‘워싱턴 선언’을 채택하여, 핵 및 전략 기획을 토의하며, 비확산 체제에 대한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핵 협의그룹(NCG)을 설립하고, 미국 전략 핵잠수함의 한국 기항에 합의하면서 미국의 확장 억제 공약을 재확인했다.
이렇듯 탄도미사일과 핵무기 고도화를 중심으로 하는 북한의 군사력 강화 시도와 합동군사훈련과 핵무기 공유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동맹 강화 시도는 안보딜레마를 끊임없이 심화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맹 강화와 군사력 강화로 억제력을 확보하여 ‘힘에 의한 평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는 오히려 세력균형이 무너지고 있다고 판단하여 마찬가지로 군사력을 강화하거나 동맹을 강화할 것이고, 더 이상 안보 강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선제공격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해, 안보 딜레마가 해소되지 않는 가운데 ‘힘에 의한 평화’는 안보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게다가 동맹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 기반을 두고 ‘남의 힘에 의한 평화’를 실현하려고 할 경우 동맹국의 정책에 대한 종속으로 인해 ‘외교적 자율성’이 상실되고, 동맹국이 적으로 규정한 국가를 자국의 적으로 규정하게 되어 안보 위협이 오히려 증대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결국 ‘힘에 의한 평화’가 효과를 거두려면 안보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 다시 말해 상대와 신뢰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러-우 전쟁, 세계 질서 변화 결정.... ‘남의 힘에 의한 평화’, 한국 안보 위협”
[겨레하나 평화포럼 지상 중계 ⑤]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한반도
장창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1년 9개월이 경과하고 있다. 전선은 교착되었으나 교전은 멈추지 않고 있다. 휴전에 대한 논의도 전개되고 있으나 전망은 불투명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 군사 작전’을 전개한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다. 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를 공격했을까. 러시아는 ‘특별 군사 작전’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러-우 전쟁’은 한반도 정세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가 대러 제재에 착수하자, 러시아는 우리를 비우호국으로 지정했다.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제공하자 ‘적대국’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발신한 지 오래다. 지난 9월 개최된 북-러 정상회담은 또 하나의 정세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소장 변학문)는 지난 11월 27일 러시아 전문가인 제성훈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초청하여 제5차 평화포럼을 진행했다. 이번 평화포럼은 한신대학교 통일평화정책연구센터(소장 장창준)와 공동 개최했다. 아래 제성훈 교수의 발표문을 요약한다.
러시아 ‘특별 군사 작전’의 목적
러시아는 UN 안보리의 결의 또는 해당 국가의 동의 없이 다른 국가를 주권을 침해하고 영토적 통합성을 위협하는 군사적 개입에 반대해 왔다. 2021년 12월 중순 미국과 나토(NATO)에 적대 관계 청산, 나토의 추가 확장 포기, 신규 회원국 영토에 병력 및 무기 배치를 금지하는 등의 요구 사항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요구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러시아는 2022년 2월 21일 도네츠크 공화국과 루간스크 공화국의 주권을 인정하고, 2월 25일 새벽 이들 국가와 체결한 조약에 따라 이른바 ‘특별 군사 작전’을 개시했다. ‘특별 군사 작전’의 목적은 “8년간 진행된 우크라이나 정권의 모욕과 집단학살에 노출된 사람들의 보호”, “우크라이나의 비군사와 비나치화”였다.
이는 다음과 같은 푸틴의 확신 때문이었다. 첫째, 미국과 나토와의 협상에서 진전은 가능하지 않다. 즉 우크라이나로의 나토 추가 확대는 기정사실이다. 둘째,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도네츠크 공화국과 루간스크 공화국 등)을 탈환하기 위한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공세는 계속될 것이다. 셋째, 시간이 흐를수록 우크라이나의 군사력과 민족주의적 경향 역시 강화될 것이다.
세계질서의 변화를 결정할 미국과 러시아의 패권전쟁: 세계적 차원
세계적 차원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질서의 변화를 결정하는 미국과 러시아의 패권전쟁이다. 미국은 단극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탈소비에트 지역에서 패권 국가의 출현을 저지하려 한다. 미국은 얄타회담에서 소련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하여 냉전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얄타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러시아에 어떠한 양보도 해서는 안 된다는 ‘얄타 트라우마’가 탈냉전기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비타협적 정책으로 현실화하였다. 그 결과 미국은 러시아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로까지 나토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러시아는 다극 체제 형성을 위해 탈소비에트 지역에서 패권 국가가 되려고 한다. 러시아는 냉전 종식을 선언했던 몰타회담 이후 진행된 탈냉전의 결과가 결코 자신에게 공정하지 못했다는 ‘몰타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미국이 ‘강요하는’ 세계질서에 순응해서는 안 된다는 ‘몰타 트라우마’는 2000년대 미·러 갈등을 거쳐 신수정주의 정책으로 발전하여, 탈소비에트 지역을 통합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화했다.
특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탈소비에트 지역 통합의 대상으로 여겨왔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문명적 차원에서 키예프는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공동의 민족적 근원지이며, 크림반도는 종교적 근원지이다. 둘째, 경제적 차원에서 우크라이나는 구(舊)소련 국가 중 두 번째로 인구가 많고, 세 번째로 경제 규모가 큰 국가이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천연자원, 흑토지대, 흑해 연안의 항구, 러시아와 통합된 산업·교통·에너지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셋째, 안보적 차원에서 우크라이나가 통합에서 제외되면 러시아와 나토 간 완충지대가 상실되는 안좋은 결과가 발생하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위협하는 미국과 나토의 교두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안보 딜레마의 심화에 따른 인접국 간 전쟁: 지역적 차원
지역적 차원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안보 딜레마의 심화로 인한 인접국 간 전쟁이다. 안보 딜레마는 한 국가가 자신의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취하는 행동은 다른 국가의 대응을 유발하여, 결과적으로 해당 국가의 안보가 증가하기보다 오히려 감소하게 되는 상황을 뜻한다. 러시아는 2010년부터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였다. 안보 강화를 위한 노력을 나토와의 관계가 강화되는 것이었다.
2010년 11월 우크라이나는 나토의 MD 능력 개발을 확보하기로 했고, 2016년 나토의 MD 기본 운영 능력 확보를 선언했다. 2019년은 이런 노력을 본격화하여, 그해 2월 우크라이나 의회는 포로센코 당시 대통령이 제출한 우크라이나의 EU 및 나토 가입 노선이 명시된 헌법 개정안을 승인했다.
그 이후 우크라이나는 나토와 함께 정기적인 군사훈련을 시작했고, 우크라이나에 공중 및 해상 공격이 가능한 인프라(비행장 네트워크 현대화, 영공 개방, 해군작전센터 등)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2022년 2월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보장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핵무기를 보유할 권리를 가진다고 언급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군사적 수단을 통해 크림반도를 탈환하고 돈바스 내전을 해결하려 준비하고 있고, 러시아를 공격하기 위한 미국과 나토의 ‘교두보’가 되고 있다고 인식하기 시작한다. 2022년 2월 21일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군 및 특수임무부대의 활동을 외국 고문들이 지도하고 있고, 최근 수년간 훈련을 구실로 나토 국가의 부대가 우크라이나에 상시 주둔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군의 지휘·통제 체계가 이미 나토와 통합되어 있어서 나토 본부가 우크라이나 군을 직접 지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날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소련의 핵 기술과 그 운반 수단을 보유하고 있어서 서방의 기술 지원이 있다면 전술 핵무기 획득이 다른 나라보다 쉬울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이를 러시아의 전략적 위협으로 규정했다.
정체성 갈등으로 인한 내전의 국제화: 국내적 차원
국내적 차원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정체성 갈등으로 인한 내전이 국제화된 전쟁이다. 우크라이나의 동부와 서부는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다. 동부의 경우 17세기 중반~18세기 후반 무렵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어, 언어·문화·종교적 차원에서 ‘러시아화’된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아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우선시한다.
이에 반해 우크라이나 중서부는 오랜 기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 폴란드, 루마니아 등의 지배를 받으면서 동부 지역과는 다른 ‘우크라이나 정체성’을 가진 우크라이나인이 압도적으로 많아 민족주의가 강세를 보이고 나토 및 EU 가입을 선호한다.
이와 같이 ‘분열된 국가로서의 우크라이나’는 2010년대 접어들어 러시아 주도의 관세 동맹 참가, EU 국가들과의 경제통합 참여 등을 놓고 치열한 정치적 대립 양상을 보여왔다. 특히 두 차례의 러시아 방문을 통해 러시아의 경제지원을 약속받은 친러 성향을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EU와의 제휴 협정 체결을 잠정 중단하자, 2013년 11월부터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였고, 결국 2014년 2월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축출되고 친서방 과도 정부가 수립되었다.
과도 정부 수립을 쿠데타로 규정하고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동남부를 중심으로 확산하자, 이미 1990년대 초 독립을 선언했다가 합의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던 크림자치공화국은 2014년 3월 주민투표를 거쳐 러시아와 병합 조약을 체결했으며, 동부 지역의 루간스크주와 도네츠크주는 2014년 4월 독립을 선언했다.
이 과정을 통해 돈바스 내전이 발발했고, 돈바스 내전을 해결하기 위해 민스크 협정이 체결되었으나 이행되지 않았다. 2014년 9월과 2015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합의된 민스크 협정은 우크라이나의 영토적 통합성을 보장하는 대신 루간스크주와 도네츠크주에 특별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2014년 4월부터 8년간 14,000명 이상이 사망할 정도로 돈바스 내전은 지속되었고, 이 내전은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러시아가 ‘무력시위’를 벌이는 국제전의 성격을 함께 갖고 있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한반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동북아시아 대결 구도를 회피하기 위한 강대국 외교가 펼쳐지는 과정에서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2022년 6월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에서 러시아를 ‘동맹국의 안보와 유럽-대서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가장 중요하고 직접적인 위협’, 중국을 ‘우리의 이익과 안보, 가치에 도전하고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약화하려는 자’로 규정했다.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최초로 개최된 인도·태평양 파트너 4개국(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는데, 이는 유럽·대서양 지역 안보와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가 분리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2022년 11월 ‘인도·태평양 한·미·일 3국 파트너십에 대한 프놈펜 성명’에서 3국 정상은 ‘‘국제질서의 근간을 뒤흔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잔혹하고 정당화될 수 없는 침략전쟁에 대항하여 우크라이나와 함께한다는 의지를 확인’하면서, ‘인도·태평양 수역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하며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또한 2023년 8월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캠프 데이비드 정신’, ‘캠프 데이비드 원칙’, ‘한·미·일 간 협의에 대한 공약’을 채택하여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 간 전략적 공조, 한·미·일 3국 협력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한편 북·중·러 연대 역시 강화되었다.
2022년 2월 ‘신시대 국제관계와 지구적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러·중 공동성명’에서 양 정상은 “양국 간 우호는 경계가 없고, 협력에는 금지된 영역이 없다”면서 협력을 과시했다. 실제로 중국과의 이런 우호·협력 관계가 없었더라면, 러시아가 중국과 인접한 동부 군관구의 대규모 병력과 무기·장비를 우크라이나 공격에 동원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2022년 2월부터 현재까지 UN 총회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하여 6개의 결의안을 채택했는데, 북한은 러시아, 벨라루스, 시리아를 제외하면 모든 결의안에 반대한 유일한 국가이다. 2023년 1월 김여정 국무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부부장은 북한 고위급 인사 중 최초로 러시아의 이른바 ‘특별 군사 작전’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했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로씨야를 파멸시키기 위한 대리전쟁’으로 규정하고, “우리는 국가의 존엄과 명예, 나라의 자주권과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싸움에 나선 로씨야 군대와 인민과 언제나 한 전호에 서 있을 것이다”라며 러시아를 지지했다.
지난 7월 북한의 전승절 70주년 기념식에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참석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푸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고, 러시아 국방부는 이번 방문이 북·러 군사 관계 강화를 촉진하고 양국 간 협력 발전의 중요한 단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9월 개최된 북·러 정상회담은 세계 질서의 변화에 부합하는 북-러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 정권 수립과 한국전쟁에서 시작된 양국의 역사적 유대 관계를 확인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 역시 북한의 최우선 순위가 러시아와의 관계라고 언급했다.
남북 간 안보 딜레마 해소를 위한 신뢰 구축 필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안보 딜레마 심화에 따른 인접국 간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남북 사이에도 안보 딜레마 해소를 위한 신뢰 구축이 필요하다.
2022년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8발을 포함하여 역대 최다 미사일 시험발사 실시,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ICBM 능력 제고, 다탄두 개별유도 기술 제고, 핵잠수함 및 수중 발사 핵전략 무기 개발, 군정찰위성 개발 등 이른바 ‘전략무기 5대 과업’ 달성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2022년 11월 한·미·일 3국 정상회의 이후에는 미국의 ‘확장 억제력 제공 강화’ 언급에 경고한다는 명분으로 미사일 발사 빈도가 증대했다.
또한 2022년 9월 북한은 법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를 채택하면서, ‘핵무력 정책’ 법제화를 통한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공식화했다. 2023년 9월에는 “핵무기 발전을 고도화해 생존권과 발전권을 담보하고 전쟁을 억제하며 지역과 세계 평화와 안정을 수호한다.”라고 명시하면서 이른바 ‘핵무기 고도화’ 정책을 헌법에 명시했다.
한국과 미국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축소·조정·연기된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이 2022년부터 다시 시작했다.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이 2017년 8월 이후 5년 만에 ‘을지 자유의 방패’(UFS)로 명칭을 바꾸어 부활했고, 연대급 이상 한·미 연합 야외 기동훈련도 재개했다. 2022년 10~11월에는 5년 만에 한·미 군용기 240여 대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합 공중 훈련 ‘비질런트 스톰’(Vigilant Storm)이 진행됐으며, 한·미·일 3국 해상 전력은 2022년 9월 30일 동해 독도 인근 공해상에서 2017년 4월 이후 5년 만에 연합 대잠수함 훈련 시행, 2023년 4월에도 연합 대잠수함 훈련, 수색·구조훈련이 시행되었다.
2023년 4월 한미 정상은 ‘워싱턴 선언’을 채택하여, 핵 및 전략 기획을 토의하며, 비확산 체제에 대한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핵 협의그룹(NCG)을 설립하고, 미국 전략 핵잠수함의 한국 기항에 합의하면서 미국의 확장 억제 공약을 재확인했다.
이렇듯 탄도미사일과 핵무기 고도화를 중심으로 하는 북한의 군사력 강화 시도와 합동군사훈련과 핵무기 공유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동맹 강화 시도는 안보딜레마를 끊임없이 심화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맹 강화와 군사력 강화로 억제력을 확보하여 ‘힘에 의한 평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는 오히려 세력균형이 무너지고 있다고 판단하여 마찬가지로 군사력을 강화하거나 동맹을 강화할 것이고, 더 이상 안보 강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선제공격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해, 안보 딜레마가 해소되지 않는 가운데 ‘힘에 의한 평화’는 안보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게다가 동맹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 기반을 두고 ‘남의 힘에 의한 평화’를 실현하려고 할 경우 동맹국의 정책에 대한 종속으로 인해 ‘외교적 자율성’이 상실되고, 동맹국이 적으로 규정한 국가를 자국의 적으로 규정하게 되어 안보 위협이 오히려 증대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결국 ‘힘에 의한 평화’가 효과를 거두려면 안보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 다시 말해 상대와 신뢰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