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은 미국의 전쟁기지가 아니다!
국면전환용 전쟁위기 조장 윤석열은 퇴진하라!
부산, 서울, 울산, 전북, 경주 등 전국 각지에서 60여명의 회원들이 모여 자주평화원정단 5박 6일의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1일차에는 부산 미 해작사가 내려다 보이는 신선대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미국의 전쟁기지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한영 첫만남 기념비라는 제국주의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비석을 세워둔 것에도 분노했습니다. 신선대 꼭대기에서는 출정식을 가지고 미 해작사의 본질을 폭로하는 경고문을 부착하는 상징행동도 진행했습니다.
2일차 일정은 군산 공군 기지 답사를 위해 동이 트기 전 시작했습니다!
십수 년 간 현장에서 투쟁해오신 해설사분들의 해설을 들으며 군산 공군 기지 답사를 진행했습니다. 도착하자 마자 들리는 전투기의 굉음을 들으며 우리 땅에서 이렇게나 당당히 전쟁연습을 자행하는 미국의 모습에 분노하기도,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군산 공항과 공군 기지를 잇기 위해 갯벌을 메우고 큰 돈까지 들여가며 시설을 옮기는 미국, 우리 땅 곳곳을 전쟁 기지로 만들고 전쟁을 준비하는 미국은 이 땅에 필요 없음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답사 후에는 수백년 간 마을을 지켜온 하제마을 600년 팽나무 앞에서 결의대회를 진행했습니다.
군산 답사를 마치고는 학살지 답사를 떠났습니다. 먼저 노근리에서 한국전쟁 당시 양민들을 무참히 학살했던 쌍굴다리를 둘러보았습니다. 탄환이 스쳐지나간 흔적, 총탄이 박혀있던 흔적을 보며 당시의 참혹함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후에는 대전 산내 골령골에 갔습니다. 골령골 또한 한국전쟁 당시 미국에 의한 학살이 이루어진 곳으로 희생자 대부분이 정치범이었다고 합니다. 통일된 조국을 꿈꿨다는 이유로, 미국과 이승만 정부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천 명이 넘는 사람이 무참히 학살된 현장에서 자주가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지 절감했습니다.
골령골 답사 후에는 유가족회 회장님과의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한 평생을 빨갱이의 딸이라는 낙인으로 살아오시며 이 사실 앞에 한 치의 물러섬도 없으셨던 회장님의 일생을 들으며 비통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저희와 같은 대학생들이 꼭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주시기를 당부하시며 저희가 있기에 마음이 놓이신다는 말씀에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이 분들의 고통과 미국의 본질을 외면할 수 있는가 다시금 생각하고 결의를 다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3일차에는 동두천과 양주로 떠나 성병관리소-주한미군 공여지 반환 구역-무연고자 묘역-효순미선 평화공원 순으로 답사를 진행했습니다.
성병관리소 앞에서 해설을 들으며미군이 기지촌 여성을 얼마나 멸시했을지, 이들이 당한 수모와 고통이 얼마나 아팠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습니다. 동두천 일대는 지대가 낮아 원래 농사를 짓는 논밭이 있던 곳이지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군기지가 들어오고 미군들을 위한 시설들이 필요하자, 하나의 마을이 형성될 조건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영어로 된 간판들이 즐비한 도로를 보니 큰 괴리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주한미군 공여지 반환 구역에 갔습니다. 공여지는 미군이 직접적으로 쓰고 있지는 않으나 쓰고 싶으면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되어있는 땅이라고 합니다. 이 공여지를 반환하기 위한 투쟁이 벌어졌고 결국 승리하였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기념비도 세웠는데 아랫돌에 쓰인 '우리땅'이라는 단어가 마음을 울컥하게 했습니다. 동두천에서 마지막으로 무연고지 묘역을 찾아 제를 올렸습니다. 무연고자 묘역은 아무도 모르게 죽어간 기지촌 여성들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죽은 동료의 상여를 메고 미2사단 사령관에게 사과받기 전에는 떠나지 않겠다며 사과를 받은 후에야 이곳으로 왔다고 합니다.
미군에 의해 죽임들 당하는 것이, 또 이를 덮는 것이 당연시되던 곳에서 이름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윤금이들을 보니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후에는 양주로 가 효순미선 사건 현장부터 평화공원까지 행진을 진행했습니다. 효순미선이 걸었을 길을 따라 걸으며 그 날의 일을 떠올려보아도 효순미선이 사고 직전 얼마나 무서웠을까, 또 얼마나 아팠을까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행진 후에는 평화공원에서 자주평화원정단의 결의를 담은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마무리했습니다.주한미군에 의해 벌어진 참혹한 범죄들. 전국 각지가 주한미군의 전쟁기지인 만큼 해당 마을 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느낍니다. 존재만으로도 삶에 위협이 되는 주한미군은 이 땅 어디에도 필요 없음을 절감하며 하루 빨리 미국을 몰아내자고, 그것을 우리가 열어가자고 결의하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4일차에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미군기지가 있는 평택으로 떠났습니다.
평택 기지 확장을 위해 삶터를 통째로 빼앗겼던 대추리 투쟁을 돌아볼 수 있는 대추리역사관에 먼저 갔습니다. 대추리평화마을 이장님께서 대추리 투쟁에 대한 해설을 해주셨습니다. 평화롭던 마을이 미군의 전쟁연습을 위해 한순간 쑥대밭이 되고 대대로 이어오던 터전을 빼앗긴 대추리. 그럼에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함께 싸워나갔던 대추리. 감히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우리 땅 어느 곳이든 언제 미군의 전쟁터가 될 수 있다는 것만큼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평택평화센터장님의 미군 기지 현황에 대한 강연을 듣고 캠프 험프리스 답사를 진행했습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큰 미군 기지인 캠프 험프리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철조망 너머의 기지를 바라보니 대추리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또 미군 가족의 숙소로 사용되는 패밀리 하우징을 기지 밖에서 기지 안으로 이전하면서 새로운 건물을 세우는데 여기에 방위비분담금 외의 비용으로 한국 정부가 대부분을 부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치 고급 리조트처럼 생긴 기지 안을 바라보며 저런 곳에 쓰일 돈이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한 공공주택에 사용된다면, 우리 민중을 위해 사용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답사를 마친 후에는 815자주평화실천단 집회와 공동투쟁에 함께 했습니다. 뜨거운 날씨였지만 전국에서 모인 자주평화실천단이 함께 집회를 하고 투쟁을 하니 어느 때보다 기세 있고 힘차게 구호도 외치고 노래도 부르며 마칠 수 있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하루의 마무리로 서울 최초이자 유일 진보 구의원이신 최나영 의원님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활동을 시작하신 대학생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셨던 고민과 결심들을 들으니 지금의 우리 대학생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입장으로 지금의 정세를 받아들고 살아갈 것인가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5일차에는 대북확성기와 대북전단으로 이땅에서 가장 전쟁위기가 높은 파주에 갔습니다.
어느 곳보다 북녁땅이 가까워 남북관계가 좋을때는 통일을 가장 크게느낄 수 있었던 오두산 전망대에는 대북확성기가 설치되어있었습니다. 가장 전쟁위기가 높은 곳으로 변한 오두산 전망대와 대북확성기를 보면서 전쟁을 하고자 대북전단 살포를 방치하는 윤석열 정권에 더욱 화가나기도 했습니다. 접경지역 주민이자 파주겨레하나 대표님의 해설을 들으며 접경지역 주민들의 불안감과 분노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살기 때문에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는 접경지역의 주민들의 마음에 공감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답사 후에는 파주시내에서 전쟁연습 중단과 대북확성기, 대북전단 살포 규탄을 위한 행진과 문화제를 진행했습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 8.15대회를 앞두고 청년학생 전야제에 참가했습니다. 뜨거운 8월을 보낸 청년학생들이 모여 활동을 나누고 자주와 평화를 위해 앞으로도 실천해나가자는 마음을 모았습니다.
뜨거운 날씨 속 5박 6일의 일정을 마치며 미군에 의해 성한 곳 없는 이땅을 마주하며 화가 나기도 슬프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 투쟁하고 있는 우리 민중들의 역사를 알게되었습니다. 미국의 전쟁기지가 된 땅에서 만들어진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고 그 속에서 더이상 고통받는 민중들이 없도록 우리가 더 앞장에서 투쟁하자고 다짐하였습니다.
이 땅은 미국의 전쟁기지가 아니다!
국면전환용 전쟁위기 조장 윤석열은 퇴진하라!
부산, 서울, 울산, 전북, 경주 등 전국 각지에서 60여명의 회원들이 모여 자주평화원정단 5박 6일의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1일차에는 부산 미 해작사가 내려다 보이는 신선대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미국의 전쟁기지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한영 첫만남 기념비라는 제국주의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비석을 세워둔 것에도 분노했습니다. 신선대 꼭대기에서는 출정식을 가지고 미 해작사의 본질을 폭로하는 경고문을 부착하는 상징행동도 진행했습니다.
2일차 일정은 군산 공군 기지 답사를 위해 동이 트기 전 시작했습니다!
십수 년 간 현장에서 투쟁해오신 해설사분들의 해설을 들으며 군산 공군 기지 답사를 진행했습니다. 도착하자 마자 들리는 전투기의 굉음을 들으며 우리 땅에서 이렇게나 당당히 전쟁연습을 자행하는 미국의 모습에 분노하기도,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군산 공항과 공군 기지를 잇기 위해 갯벌을 메우고 큰 돈까지 들여가며 시설을 옮기는 미국, 우리 땅 곳곳을 전쟁 기지로 만들고 전쟁을 준비하는 미국은 이 땅에 필요 없음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답사 후에는 수백년 간 마을을 지켜온 하제마을 600년 팽나무 앞에서 결의대회를 진행했습니다.
군산 답사를 마치고는 학살지 답사를 떠났습니다. 먼저 노근리에서 한국전쟁 당시 양민들을 무참히 학살했던 쌍굴다리를 둘러보았습니다. 탄환이 스쳐지나간 흔적, 총탄이 박혀있던 흔적을 보며 당시의 참혹함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후에는 대전 산내 골령골에 갔습니다. 골령골 또한 한국전쟁 당시 미국에 의한 학살이 이루어진 곳으로 희생자 대부분이 정치범이었다고 합니다. 통일된 조국을 꿈꿨다는 이유로, 미국과 이승만 정부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천 명이 넘는 사람이 무참히 학살된 현장에서 자주가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지 절감했습니다.
골령골 답사 후에는 유가족회 회장님과의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한 평생을 빨갱이의 딸이라는 낙인으로 살아오시며 이 사실 앞에 한 치의 물러섬도 없으셨던 회장님의 일생을 들으며 비통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저희와 같은 대학생들이 꼭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주시기를 당부하시며 저희가 있기에 마음이 놓이신다는 말씀에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이 분들의 고통과 미국의 본질을 외면할 수 있는가 다시금 생각하고 결의를 다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3일차에는 동두천과 양주로 떠나 성병관리소-주한미군 공여지 반환 구역-무연고자 묘역-효순미선 평화공원 순으로 답사를 진행했습니다.
성병관리소 앞에서 해설을 들으며미군이 기지촌 여성을 얼마나 멸시했을지, 이들이 당한 수모와 고통이 얼마나 아팠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습니다. 동두천 일대는 지대가 낮아 원래 농사를 짓는 논밭이 있던 곳이지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군기지가 들어오고 미군들을 위한 시설들이 필요하자, 하나의 마을이 형성될 조건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영어로 된 간판들이 즐비한 도로를 보니 큰 괴리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주한미군 공여지 반환 구역에 갔습니다. 공여지는 미군이 직접적으로 쓰고 있지는 않으나 쓰고 싶으면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되어있는 땅이라고 합니다. 이 공여지를 반환하기 위한 투쟁이 벌어졌고 결국 승리하였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기념비도 세웠는데 아랫돌에 쓰인 '우리땅'이라는 단어가 마음을 울컥하게 했습니다. 동두천에서 마지막으로 무연고지 묘역을 찾아 제를 올렸습니다. 무연고자 묘역은 아무도 모르게 죽어간 기지촌 여성들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죽은 동료의 상여를 메고 미2사단 사령관에게 사과받기 전에는 떠나지 않겠다며 사과를 받은 후에야 이곳으로 왔다고 합니다.
미군에 의해 죽임들 당하는 것이, 또 이를 덮는 것이 당연시되던 곳에서 이름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윤금이들을 보니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후에는 양주로 가 효순미선 사건 현장부터 평화공원까지 행진을 진행했습니다. 효순미선이 걸었을 길을 따라 걸으며 그 날의 일을 떠올려보아도 효순미선이 사고 직전 얼마나 무서웠을까, 또 얼마나 아팠을까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행진 후에는 평화공원에서 자주평화원정단의 결의를 담은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마무리했습니다.주한미군에 의해 벌어진 참혹한 범죄들. 전국 각지가 주한미군의 전쟁기지인 만큼 해당 마을 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느낍니다. 존재만으로도 삶에 위협이 되는 주한미군은 이 땅 어디에도 필요 없음을 절감하며 하루 빨리 미국을 몰아내자고, 그것을 우리가 열어가자고 결의하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4일차에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미군기지가 있는 평택으로 떠났습니다.
평택 기지 확장을 위해 삶터를 통째로 빼앗겼던 대추리 투쟁을 돌아볼 수 있는 대추리역사관에 먼저 갔습니다. 대추리평화마을 이장님께서 대추리 투쟁에 대한 해설을 해주셨습니다. 평화롭던 마을이 미군의 전쟁연습을 위해 한순간 쑥대밭이 되고 대대로 이어오던 터전을 빼앗긴 대추리. 그럼에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함께 싸워나갔던 대추리. 감히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우리 땅 어느 곳이든 언제 미군의 전쟁터가 될 수 있다는 것만큼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평택평화센터장님의 미군 기지 현황에 대한 강연을 듣고 캠프 험프리스 답사를 진행했습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큰 미군 기지인 캠프 험프리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철조망 너머의 기지를 바라보니 대추리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또 미군 가족의 숙소로 사용되는 패밀리 하우징을 기지 밖에서 기지 안으로 이전하면서 새로운 건물을 세우는데 여기에 방위비분담금 외의 비용으로 한국 정부가 대부분을 부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치 고급 리조트처럼 생긴 기지 안을 바라보며 저런 곳에 쓰일 돈이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한 공공주택에 사용된다면, 우리 민중을 위해 사용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답사를 마친 후에는 815자주평화실천단 집회와 공동투쟁에 함께 했습니다. 뜨거운 날씨였지만 전국에서 모인 자주평화실천단이 함께 집회를 하고 투쟁을 하니 어느 때보다 기세 있고 힘차게 구호도 외치고 노래도 부르며 마칠 수 있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하루의 마무리로 서울 최초이자 유일 진보 구의원이신 최나영 의원님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활동을 시작하신 대학생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셨던 고민과 결심들을 들으니 지금의 우리 대학생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입장으로 지금의 정세를 받아들고 살아갈 것인가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5일차에는 대북확성기와 대북전단으로 이땅에서 가장 전쟁위기가 높은 파주에 갔습니다.
어느 곳보다 북녁땅이 가까워 남북관계가 좋을때는 통일을 가장 크게느낄 수 있었던 오두산 전망대에는 대북확성기가 설치되어있었습니다. 가장 전쟁위기가 높은 곳으로 변한 오두산 전망대와 대북확성기를 보면서 전쟁을 하고자 대북전단 살포를 방치하는 윤석열 정권에 더욱 화가나기도 했습니다. 접경지역 주민이자 파주겨레하나 대표님의 해설을 들으며 접경지역 주민들의 불안감과 분노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살기 때문에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는 접경지역의 주민들의 마음에 공감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답사 후에는 파주시내에서 전쟁연습 중단과 대북확성기, 대북전단 살포 규탄을 위한 행진과 문화제를 진행했습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 8.15대회를 앞두고 청년학생 전야제에 참가했습니다. 뜨거운 8월을 보낸 청년학생들이 모여 활동을 나누고 자주와 평화를 위해 앞으로도 실천해나가자는 마음을 모았습니다.
뜨거운 날씨 속 5박 6일의 일정을 마치며 미군에 의해 성한 곳 없는 이땅을 마주하며 화가 나기도 슬프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 투쟁하고 있는 우리 민중들의 역사를 알게되었습니다. 미국의 전쟁기지가 된 땅에서 만들어진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고 그 속에서 더이상 고통받는 민중들이 없도록 우리가 더 앞장에서 투쟁하자고 다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