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루(探淚)』
- 평화통일 운동가 김낙중의 삶, 사랑, 가족
■ 지은이 : 김선주
■ 한울(2005년 05월 15일)
20대 찾아온 내 인생의 전기는 1988년이었다. 그 해 나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다. 낮에는 당시 잘나갔던 국회의원 비서로서 열정적으로 활동하였고, 밤에는 밤잠을 아껴가며 현대사에 목이 타는 심정으로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거나 현대사 학습반에서 기존의 사회학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역사와 사회적 진실을 접하고 있었다. 1988년 국회에서 처음 시작된 청문회와 재개된 국정감사는 새로운 민주화의 실체를 느끼게 하였다. 동시에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이나 양은식 등의 『분단을 뛰어넘어』나, 이정식 · 한홍구 등의 『한국공산주의운동사』, 김남식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자료총서』, 당시 막 귀국한 강정구 선생의 박사논문인 Rethinking South Korean Land Reform : Focusing on U.S. Struggle against History 등은 애정이 없었던 한국에 대한 존재감을 느끼게 해준 동시에 개인적 정체성을 찾아나가는데 자양분이 되었다. 특히 재미도 없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자료들을 마치 보물을 찾듯 날밤을 새워가며 읽어나갔다.
특별한 일이라면, 2002년 초에는 “평화통일 실현을 위한 분단극복운동: 강천 김낙중을 중심으로”(김진균 편저, 『저항, 연대, 기억의 정치』, 문화과학사, 2003)를 쓰기 위하여 한 달을 두고 대화를 이어나간 점이다. 선생의 파주 고향집인 ‘국창재’에서 동시대인이자, 스승과 학생, 선배와 후배, 구술자와 면담자로서 대화를 진행해 나갔다. 생생한 자료들도 보고, 배가 고프다는 핑계로 임진강에 나가 선생께서 건너신 현장을 가까이서 바라보며 식사를 하기도 했다. 말씀을 듣는 내내 온 몸과 맘에 가을의 서늘함이 내려와 있었다.
한반도 분단의 현대사는 걸출한(?) 영웅들을 만들어 왔다. 분단한국사는 열사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박치산’, 박치산, … 빨치산이라고 불렀던 박현채 선생, 민족의 시인인 김남주, 노동운동의 전태일, 통일운동의 대명사 문익환, 최근에 서거하신 민주화운동의 큰 스승이신 김진균과 통일운동의 길잡이인 김남식……, 게다가 분단의 산 증인이자 인권의 대명사였던 비전향 장기수들. 수많은 시대가 만든 영웅들이 있다. 살아 계시나 이미 그 반열에 오른 분들이 있다면 백기완 선생과 박순경 선생 등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다섯 번 간첩으로 구속되었던 김낙중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탐루』는 여성주의적 가족사이다. 물론 주인공은 김낙중 선생이지만, 아버지가 어머니와 딸에 의해 어떻게 기억되고 재구성되는가를 보여준다. 변호사 지망생이었고 문학적 재능이 다분했던 어머니 김남기 선생의 수 십 년에 걸친 일기 속에서 김낙중 선생은 저작과 공소장에 등장하는 학자이자, 운동가이며, 간첩으로서만 존재하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미 당신 스스로 기록한 『굽이치는 임진강』에서 글 쓰는 이의 정직함의 극치를 보여준 바 있으나, 너무도 투명한 기록으로 인해 오히려 생활력이 반감되었다. 그 생활력을 어머니가 불어넣고 있다, 가슴 아프도록. 어느 날 딸과 어머니가 쓴 일기를 엿보자.
(딸의 일기)1993년 2월 15일
오빠의 장학금이 다시 지급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노력이 너무 애처롭다.
어머니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자식들을 위해 비굴하리만치 안기부에 협조했다. 호텔로 가라면 호텔로 가고, 지방으로 가라면 지방으로 갔다. 그런데 결과는 그들이 협박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편은 사형을 구형받았다. 어머니 역시 반강제적으로 학교를 정리했고, 딸들은 삶의 중심을 잃었다. 그리고 아들은 장학금이 끊겼다.(……)
(어머니의 일기)1993년 3월 23일 화요일
(……)
아버지 일 터지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수모당하고 고통받으며
고달프고 힘들어서 엉엉 울던 우리 세 모녀
자꾸자꾸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어머니의 일기)1993년 4월 1일 목요일
(……)
시아버지 원망 않고 기도하는 원이(며느리) 모습 너무도 고맙구나.
시누이들을 위해 긴 시간 기도하는 그 마음, 하나님이 갚아주시겠지.
우리 혁이-맏이, 현재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김선혁을 가리킴- 뒤에 든든한 며늘아기, 엄마 마음 안심하고 귀국한다.
아버지로 인해 집을 빼앗길 위기를 겪게 될 뿐만 아니라, 유학 나가 있던 아들의 장학금마저 끊기게 되는 고통을 어머니는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았다. 남편은 설령 무기형을 당했더라도 자식들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좌절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도 한때는 반공주의를 자연스럽게 내면화시키고 현모양처를 제일의 덕목으로 삼고 있던 착한 여성이었다.
또한 『탐루』는 부재하는 아버지가 어떻게 가족에게 비쳐지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연애시절부터 남편의 옥바라지를 했던 것도 모자라 60살이 넘은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면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느낀 갈등과 애증, 고통, 회환, 좌절 속의 용기 등을 기록하고 있다.
(어머니의 일기)1993년 6월 24일 목요일
내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면 갑자기 싫어질 때가 많다. 어딘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다르기에 그토록 남편과 다정하게 못 살고 이토록 헤어져 생이별을 한단 말인가? 내가 어디가 복이 없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하루 종일 다락 청소를 하면서 외로워했다. 사돈댁에 전화를 했더니 사돈 양반이 받으셨다. 모두 저렇게 의좋게 사는데, 나는 왜 일생을 옥바라지만 하면서 살아갈까? 하기야 이렇게 살아가나 저렇게 살아가나 세상 뜨는 것은 똑같은데…
또한 이 책은 남성/여성의 상이한 입장에서 부재하는 아버지를 어떻게 위치시키는가를 잘 보여준다.
(딸의 기록) (김 선생이 4번째 간첩으로 옥살이를 하던)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오빠(김선혁)는 집안에 불어닥친 폭풍 때문에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 그래서 때로는 주위 어른들에게 ‘애늙은이 같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 어린 시절 가장 무서웠던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오빠’라고 대답할 것이다. (……) 그러던 오빠는 아버지가 출소하자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엄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재미있으면서도 자상하고 때로는 남동생처럼 짓궂은 오빠가 되었다.
(딸의 기록) 내가 ‘아버지’라는 존재와 한집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 얼마동안 나는 사사건건 아버지라는 존재가 거북했다. 이른 아침에 동네 한 바퀴를 뛰면서 운동을 해라, 책은 바른 자세로 앉아서 읽어라, 좀더 부지런해져라, 텔레비전 보는 시간을 줄여라 등등의 말이 괜한 참견 같아 거부감이 생겼다.
그러나 김선주 님은 이 책을 5년이 넘게 준비하고 집필하는 동안 청소년기 아픔의 원천이었던 아버지를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결국 아버지로 인해 고통 받고, 상처 입은 김선주 님과 가족들의 영혼과 자존심이 아버지로 인해 다시 빛을 찾게 되었다. 그 사이에 김낙중 선생의 장남인 선혁 씨가 금의환향하게 된 것도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아직 우리는 분단 시대를 살고 있지만, 과거처럼 분단과 반공이데올로기가 무소불위의 괴력을 가진 것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러한 변화가 오게 된 것은 한반도 주변 정세와 남북관계의 변화에 기인한다. 그러나 김낙중 선생과 같은 지사이자 선각자가 너무 일찍 날아온 ‘강남의 제비’로서 우리에게 던진 희망의 전령이 있었기에 비록 느리지만, 역사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전진할 수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그의 평화통일을 위한 지침 없는 노력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소중한 가족들의 고통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탐루(探淚): 평화통일 운동가 김낙중의 삶, 사랑, 가족』 목차 목차 들어가며 |
김귀옥 교수 소개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1987), 동대학 대학원 석,박사(1991, 1999).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와 여성연구소의 전임연구원.
한국정신문화연구원과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초빙연구원 등을 거쳐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객원교수, 성공회대학교 사회문화연구원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한성대학교 교양과 교수(사회학)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관심사는 분단과 전쟁, 통일과 평화, 이산가족과 여성, 분단을 넘는 사람들, 다이아스포라(diaspora) 공동체에 걸쳐있으며, 관련 연구를 위해 현지조사(fieldwork research)와 구술사 방법론을 통해 기억 속에 묻혀있는 자료를 발굴, 정리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이산가족, ‘반공전사’도, ‘빨갱이’도 아닌...: 이산가족 문제를 보는 새로운 시각』(역사비평사, 2004), 『월남민의 생활경험과 정체성-밑으로부터 월남민 연구』(서울대 출판부, 2002), 『북한여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당대, 2000), 『남북한의 실질적 통합을 위한 여성정책 강화방안』(공저, 통일연구원, 2002), 『한국사회사 연구』(공저, 나남, 2003) 등이 있다
『탐루(探淚)』
- 평화통일 운동가 김낙중의 삶, 사랑, 가족
■ 지은이 : 김선주
■ 한울(2005년 05월 15일)
20대 찾아온 내 인생의 전기는 1988년이었다. 그 해 나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다. 낮에는 당시 잘나갔던 국회의원 비서로서 열정적으로 활동하였고, 밤에는 밤잠을 아껴가며 현대사에 목이 타는 심정으로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거나 현대사 학습반에서 기존의 사회학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역사와 사회적 진실을 접하고 있었다. 1988년 국회에서 처음 시작된 청문회와 재개된 국정감사는 새로운 민주화의 실체를 느끼게 하였다. 동시에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이나 양은식 등의 『분단을 뛰어넘어』나, 이정식 · 한홍구 등의 『한국공산주의운동사』, 김남식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자료총서』, 당시 막 귀국한 강정구 선생의 박사논문인 Rethinking South Korean Land Reform : Focusing on U.S. Struggle against History 등은 애정이 없었던 한국에 대한 존재감을 느끼게 해준 동시에 개인적 정체성을 찾아나가는데 자양분이 되었다. 특히 재미도 없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자료들을 마치 보물을 찾듯 날밤을 새워가며 읽어나갔다.
특별한 일이라면, 2002년 초에는 “평화통일 실현을 위한 분단극복운동: 강천 김낙중을 중심으로”(김진균 편저, 『저항, 연대, 기억의 정치』, 문화과학사, 2003)를 쓰기 위하여 한 달을 두고 대화를 이어나간 점이다. 선생의 파주 고향집인 ‘국창재’에서 동시대인이자, 스승과 학생, 선배와 후배, 구술자와 면담자로서 대화를 진행해 나갔다. 생생한 자료들도 보고, 배가 고프다는 핑계로 임진강에 나가 선생께서 건너신 현장을 가까이서 바라보며 식사를 하기도 했다. 말씀을 듣는 내내 온 몸과 맘에 가을의 서늘함이 내려와 있었다.
한반도 분단의 현대사는 걸출한(?) 영웅들을 만들어 왔다. 분단한국사는 열사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박치산’, 박치산, … 빨치산이라고 불렀던 박현채 선생, 민족의 시인인 김남주, 노동운동의 전태일, 통일운동의 대명사 문익환, 최근에 서거하신 민주화운동의 큰 스승이신 김진균과 통일운동의 길잡이인 김남식……, 게다가 분단의 산 증인이자 인권의 대명사였던 비전향 장기수들. 수많은 시대가 만든 영웅들이 있다. 살아 계시나 이미 그 반열에 오른 분들이 있다면 백기완 선생과 박순경 선생 등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다섯 번 간첩으로 구속되었던 김낙중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탐루』는 여성주의적 가족사이다. 물론 주인공은 김낙중 선생이지만, 아버지가 어머니와 딸에 의해 어떻게 기억되고 재구성되는가를 보여준다. 변호사 지망생이었고 문학적 재능이 다분했던 어머니 김남기 선생의 수 십 년에 걸친 일기 속에서 김낙중 선생은 저작과 공소장에 등장하는 학자이자, 운동가이며, 간첩으로서만 존재하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미 당신 스스로 기록한 『굽이치는 임진강』에서 글 쓰는 이의 정직함의 극치를 보여준 바 있으나, 너무도 투명한 기록으로 인해 오히려 생활력이 반감되었다. 그 생활력을 어머니가 불어넣고 있다, 가슴 아프도록. 어느 날 딸과 어머니가 쓴 일기를 엿보자.
(딸의 일기)1993년 2월 15일
오빠의 장학금이 다시 지급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노력이 너무 애처롭다.
어머니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자식들을 위해 비굴하리만치 안기부에 협조했다. 호텔로 가라면 호텔로 가고, 지방으로 가라면 지방으로 갔다. 그런데 결과는 그들이 협박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편은 사형을 구형받았다. 어머니 역시 반강제적으로 학교를 정리했고, 딸들은 삶의 중심을 잃었다. 그리고 아들은 장학금이 끊겼다.(……)
(어머니의 일기)1993년 3월 23일 화요일
(……)
아버지 일 터지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수모당하고 고통받으며
고달프고 힘들어서 엉엉 울던 우리 세 모녀
자꾸자꾸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어머니의 일기)1993년 4월 1일 목요일
(……)
시아버지 원망 않고 기도하는 원이(며느리) 모습 너무도 고맙구나.
시누이들을 위해 긴 시간 기도하는 그 마음, 하나님이 갚아주시겠지.
우리 혁이-맏이, 현재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김선혁을 가리킴- 뒤에 든든한 며늘아기, 엄마 마음 안심하고 귀국한다.
아버지로 인해 집을 빼앗길 위기를 겪게 될 뿐만 아니라, 유학 나가 있던 아들의 장학금마저 끊기게 되는 고통을 어머니는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았다. 남편은 설령 무기형을 당했더라도 자식들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좌절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도 한때는 반공주의를 자연스럽게 내면화시키고 현모양처를 제일의 덕목으로 삼고 있던 착한 여성이었다.
또한 『탐루』는 부재하는 아버지가 어떻게 가족에게 비쳐지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연애시절부터 남편의 옥바라지를 했던 것도 모자라 60살이 넘은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면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느낀 갈등과 애증, 고통, 회환, 좌절 속의 용기 등을 기록하고 있다.
(어머니의 일기)1993년 6월 24일 목요일
내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면 갑자기 싫어질 때가 많다. 어딘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다르기에 그토록 남편과 다정하게 못 살고 이토록 헤어져 생이별을 한단 말인가? 내가 어디가 복이 없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하루 종일 다락 청소를 하면서 외로워했다. 사돈댁에 전화를 했더니 사돈 양반이 받으셨다. 모두 저렇게 의좋게 사는데, 나는 왜 일생을 옥바라지만 하면서 살아갈까? 하기야 이렇게 살아가나 저렇게 살아가나 세상 뜨는 것은 똑같은데…
또한 이 책은 남성/여성의 상이한 입장에서 부재하는 아버지를 어떻게 위치시키는가를 잘 보여준다.
(딸의 기록) (김 선생이 4번째 간첩으로 옥살이를 하던)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오빠(김선혁)는 집안에 불어닥친 폭풍 때문에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 그래서 때로는 주위 어른들에게 ‘애늙은이 같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 어린 시절 가장 무서웠던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오빠’라고 대답할 것이다. (……) 그러던 오빠는 아버지가 출소하자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엄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재미있으면서도 자상하고 때로는 남동생처럼 짓궂은 오빠가 되었다.
(딸의 기록) 내가 ‘아버지’라는 존재와 한집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 얼마동안 나는 사사건건 아버지라는 존재가 거북했다. 이른 아침에 동네 한 바퀴를 뛰면서 운동을 해라, 책은 바른 자세로 앉아서 읽어라, 좀더 부지런해져라, 텔레비전 보는 시간을 줄여라 등등의 말이 괜한 참견 같아 거부감이 생겼다.
그러나 김선주 님은 이 책을 5년이 넘게 준비하고 집필하는 동안 청소년기 아픔의 원천이었던 아버지를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결국 아버지로 인해 고통 받고, 상처 입은 김선주 님과 가족들의 영혼과 자존심이 아버지로 인해 다시 빛을 찾게 되었다. 그 사이에 김낙중 선생의 장남인 선혁 씨가 금의환향하게 된 것도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아직 우리는 분단 시대를 살고 있지만, 과거처럼 분단과 반공이데올로기가 무소불위의 괴력을 가진 것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러한 변화가 오게 된 것은 한반도 주변 정세와 남북관계의 변화에 기인한다. 그러나 김낙중 선생과 같은 지사이자 선각자가 너무 일찍 날아온 ‘강남의 제비’로서 우리에게 던진 희망의 전령이 있었기에 비록 느리지만, 역사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전진할 수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그의 평화통일을 위한 지침 없는 노력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소중한 가족들의 고통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탐루(探淚): 평화통일 운동가 김낙중의 삶, 사랑, 가족』 목차 목차 들어가며 |
김귀옥 교수 소개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1987), 동대학 대학원 석,박사(1991, 1999).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와 여성연구소의 전임연구원.
한국정신문화연구원과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초빙연구원 등을 거쳐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객원교수, 성공회대학교 사회문화연구원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한성대학교 교양과 교수(사회학)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관심사는 분단과 전쟁, 통일과 평화, 이산가족과 여성, 분단을 넘는 사람들, 다이아스포라(diaspora) 공동체에 걸쳐있으며, 관련 연구를 위해 현지조사(fieldwork research)와 구술사 방법론을 통해 기억 속에 묻혀있는 자료를 발굴, 정리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이산가족, ‘반공전사’도, ‘빨갱이’도 아닌...: 이산가족 문제를 보는 새로운 시각』(역사비평사, 2004), 『월남민의 생활경험과 정체성-밑으로부터 월남민 연구』(서울대 출판부, 2002), 『북한여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당대, 2000), 『남북한의 실질적 통합을 위한 여성정책 강화방안』(공저, 통일연구원, 2002), 『한국사회사 연구』(공저, 나남, 200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