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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페미니즘』
지은이 : 정 현 백 출판사 : 당대 (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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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이 함께 하는 자리에는 여성들이 빠지지 않는다. 2002년 미선이, 효선이의 죽음 앞에서 범평화통일단체와 여성단체들이 한 자리에서 촛불시위를 이끌어내었다. 양성평등 문제나 일반 사회 문제뿐만 아니라 남북 분단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서 여성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분단 문제나 민족 문제에서 여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다소 불편한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 돌아보면 1980년대에도 그랬던 것 같다. 1980년대 어느 때 소위 ‘남녀공학’ 대학 내에서 여학생회를 준비하고 있을 때 어느 남학우가 ‘지금이 어느 때인데, 여학생회나 만드냐’고 비분강개했다. 목소리 높여 싸웠지만, 여학생회는 1년만에 시들해졌다. 건설과 해체는 70년대도 있었고, 90년대에도 있었다. 그때마다 구체적 이유는 달랐다. 그럼에도 70년대나 80년대에는 비슷한 이유가 건설과 해체의 이유로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쩜 큰 문제에 양보해야할 작은 문제라는 이유로... 그 이유는 옳지 않을 것 같은데, 그 이유가 틀림을 깨닫는 데에는 얼마간의 세월이 흘러서였다. “사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명제는 틀림의 이유를 명명백백히 밝혀주는 듯했다. 공사를 규준 지은 민족국가, 민족적 사명 앞에 젠더적 문제는 사적이며 작은 문제라는 주장 자체가 가부장적 질서의 관계지움이고 그 질서에 기반을 둔 배제와 동원의 논리에 서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가부장제 질서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민족국가를 해체시켜야 하는가? 여성의 강탈사건이나 성희롱사건 등이 사소한 문제나 비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며, 그러한 문제가 계급 또는 인종, 민족, 세대, 지역 등을 가로질러 발생하고 있다. 2000년 12월에는 일본제국주의가 세계 여성을 향해 저질러진 죄악에 대해, 세계 여성들이 연대하여 국가폭력이라는 이름의 전범자 일본왕을 모의 재판하는 사건도 있었다. 2001년 미국의 탈레반 정권에 대한 공격 당시 여성에 대해 가해진 탈레반 정권의 비인권적 악행에 의해 정당시되는 목소리마저 나왔다. 또한 2003년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에 대한 침공을 정당시 하던 미국의 주장에서 민중의 인권, 여성의 인권 억압에 대한 해방을 정당시하는 주장이 섞여 있었다. 이미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 페미니스트들 사이에도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은 상극이라고 하는 인식과 민족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나직히 깔려 있다. 과연 세계화시대 여성해방의 과제를 풀기에 민족 또는 민족국가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가? 역으로 페미니즘은 민족주의, 분명하게 말하면 민족 문제에 무관심해야 마땅한가? 이 물음을 『민족과 페미니즘』(당대, 2003)에서 정현백은 정면으로 던지고 있다. 그는 삼십년 가까운 서구 지성사, 노동운동사에 대한 탐색과 페미니즘에 대한 폭넓은 연구와 함께 유학 직후 한국에서 유기적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참여와 여성운동에 대한 헌신으로 이제 지식인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2005년 현재 여성운동의 중심에 서있다. 그는 이론과 운동, 학문과 실천의 부단한 대화를 주장하고 스스로 실천해왔다. 그 가운데 페미니즘에 있어서 아킬레스 건과 같은 문제인 민족주의 또는 민족국가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내놓은 바 있다. 그는 민족주의를 거부하는 서구 페미니즘 속에 녹아 있는 문화제국주의적 시선을 극복해야할 필요성을 운동적, 세계적, 한국적 지평에서 제시하고 있다. 우선 그는 서구사에 대한 깊은 성찰에 기반 하여 민족주의의 건강성과 병약성을 직시함과 동시에 여성운동이 민족주의 운동과 결별하는 순간, 여성은 하부문화에 갇히게 됨을 목격하고 있다. 또한 ‘총체적 시각’으로 페미니즘으로 인식할 때 여성내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적 이질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서구 백인여성 중심의 페미니즘은 ‘제3세계’ 페미니즘과의 진지한 대화의 지연으로 인해 여성운동 내에 오랫동안 몰이해와 거리가 있었다. 나아가 한국 페미니즘이 처해 있는 민족주의와의 어쩔 수 없는 결합은 한국이 처해 있는 분단극복과 통일, 군사주의의 과제에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서구 페미니즘의 시선에서는 가부장제에 포획된 존재로밖에 이해되지 않는 북한 여성에 대한 정형화의 경향을 넘어서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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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좌로부터 박영미, 정현백,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 그는 페미니즘과 민족주의가 대화하는 방법을 ‘평화를 통한 통일’에서 찾고 있다. 평화, 평화교육과 평화운동은 한국적인 것이 세계를 만나는 길임과 동시에 한국적인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코드이다. 또한 민족담론과 여성담론의 불행한 동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 한반도 분단과 내안의 군사주의를 넘어서는 미래지향적 전망을 평화에 기초한 "함께 그리고 따로"에서 찾고 있다. 아직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습에서 희망의 근거를 제시한다. 이제 그에게는 또 다른 과제와 요구가 제기된다. 총체성을 구현한 ‘한국적’ 페미니즘의 지평 위에서 한국여성사를 써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한반도의 민족 문제를 페미니즘이 어떻게 수용하고 학문적으로 결합하며 실천적으로 전망을 해내야 하는가를 대답해야 한다. 또한 왜 한반도에서 여성이 평화의 이름이건 통일의 이름이건 민족 문제를 사고하고 해답을 찾아야 하는지 깊은 통찰을 제시해야 한다. 요컨대 한반도 여성이 여성이면서 동시에 분단의 피해자이며 민족 문제를 동시에 체현하고 있는가를 설명하고 그 극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를 말해야 한다. 이제 서구적 오리엔탈리즘에 경도된 1세대 페미니스트를 넘어, 열린 한반도적 지평 위에서 민족 모순과 민족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하여 한국 페미니즘과 여성운동은 통일운동의 연대성의 전망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 |
김귀옥 교수 소개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1987), 동대학 대학원 석,박사(1991, 1999).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와 여성연구소의 전임연구원. 한국정신문화연구원과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초빙연구원 등을 거쳐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객원교수, 성공회대학교 사회문화연구원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한성대학교 교양과 교수(사회학)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관심사는 분단과 전쟁, 통일과 평화, 이산가족과 여성, 분단을 넘는 사람들, 다이아스포라(diaspora) 공동체에 걸쳐있으며, 관련 연구를 위해 현지조사(fieldwork research)와 구술사 방법론을 통해 기억 속에 묻혀있는 자료를 발굴, 정리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이산가족, ‘반공전사’도, ‘빨갱이’도 아닌...: 이산가족 문제를 보는 새로운 시각』(역사비평사, 2004), 『월남민의 생활경험과 정체성-밑으로부터 월남민 연구』(서울대 출판부, 2002), 『북한여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당대, 2000), 『남북한의 실질적 통합을 위한 여성정책 강화방안』(공저, 통일연구원, 2002), 『한국사회사 연구』(공저, 나남, 2003) 등이 있다. | |